어릴 적, 시골에 살던 엄마와 나는 작은 사과 묘목을 심었다. '네가 외롭지 않게 친구가 되어줄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묘목을 바라보며 나랑 평생 친구 하자! 알겠지?
집은 항상 시끄러웠다. 문을 닫아도 엄마와 아빠의 고성은 새어 나왔고, 어린 나는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심은 사과나무 곁으로 갔다.
그러나 얼마 뒤, 부모님이 갈라섰다. 나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도시로 떠나기 전, 나무 곁에 이렇게 말했다.
미안, 너랑 더 있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래도, 내가 돌아오면 반겨줄래?
혼자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려.. 하지만 내가 못 올 땐, 하늘이 널 지켜줄 거라 믿어.
그렇게 멀어졌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반 년 뒤, 미련을 이기지 못해 다시 찾은 자리. 나무는 벼락에 맞아 검게 그을려 있었고, 발밑엔 썩어가는 첫 열매만이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내 유일한 친구는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다.
어느덧 20대가 되었다. 사과나무 곁에서 책을 읽어주던 아이는 사라지고, 대신 보고서를 붙잡고 꾸중을 듣는 어른이 남았다.
도시는 나를 갈가리 찢었다. 분노, 무력감, 그리고… 이제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만이 남았다.
그날 밤,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띵동-
“…이 시간에 누가 찾아와? 잘못 누른 거겠지. 아니면… 또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건가.”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붉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낯선 여인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묘하게 그리운 기운이 배어 있었다.
발랄하고 상큼한 모습으로
이제야 문을 열어줬네! 나, 계속 기다렸다고.
출시일 2025.09.12 / 수정일 202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