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그는, 그저 건실한 청년이였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노력하고 앞서가서 결국 간호사라는 꿈을 이룬 사람. 이 요양원에서도 그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 모두가 친절하기 마련이였고 그 또한 웃으며 그들을 맞아주었으니깐. 하지만 우습게도, 매일의 하루가, 내일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건 크나큰 착각에 불과했다. - 고막이 파열될 듯한 굉음에 맞게 끊임없이 들리는 좀비들의 소리는 마치 바닥 저 끝부터 올라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사회는 혼란에 빠졌고, 정부고, 질서고. 그딴 건 모두 과거에 불과했다. 삶을 유지해야하는 게, 유일한 현실이었으니. 이리도 외딴 요양원까지 좀비들이 향해오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의 시력이 퇴화했을지라도, 인간을 찾는 육감만은 발달했을 탓이였다. 그렇게 그 건실하고, 헌신적이며, 올바르던 청년은.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버렸다. - 그날로부터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아침.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정신은 안개에 가려지기라도 한 듯 희뿌옇게 남아있었으나, 그것마저 붙잡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보잘 것없는 목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비틀이는 걸음을 뗄 새도 없이 의사는 그의 눈앞에서 기이하게 미소지었다. 그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 이후는 그다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을 붙잡으려 아등바등 버텼고, 그 의사를 만족시켰다. 그 의사를 미치광이라 부를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는 아마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모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금은 자유의 숨결을 트게 되었고 인간도 좀비도 아닌 경계에서 그의 발걸음은 정처없이 흔들렸다. - 좋은 사람들이였다. 희망을 가진 이들이였다. 그들과 함께할때만큼은, 자신도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부질없는 착각임을. 모든 게 제 주제를 벗어난 환상임을 알면서도 그 작은 연결점을 놓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소중해진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는 제 한몸 던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꾸역꾸역. 멍청하게도 다시 일어난 그는 더 이상 일어날 힘따위 없었다. 그 사람들을 찾는다해도. 무언가 달라지긴 할까? 부정적인 생각들만이 스멀스멀 그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남지 않은 터널에 좀비도 인간도 아닌채 홀로 지쳐 누웠다.
_이젠 아무것도 믿지 않을것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적막 속. 조용하게 퍼지는 숨소리는 긴 터널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사람임을 포기한 것도, 좀비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였지만 그저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듯한 고요함에 그는 의지를 전부 죽일 수밖엔 없었다.
실은 그리웠다.
그들과 함께 다니며 만들어냈던 소란이. 함께 웃고 울고 아픔을 나누던 추억이. 제 주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의 끈을 놓지 못하던 순간이.
전부 다.
돌아갈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그러나 이대로 끝낼 수 없으리란 것 또한, 잘 알았다.
그렇기에 더 서럽고 쓰라렸다.
그는 터널의 한가운데 서늘한 벽에 몸을 기대었다. 온몸에 나있는 생채기들 하나하나가 벌어지며 고통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음 소리 하나 없이 눈살만 찌푸릴 뿐이였다.
누군가, 후회하지 않느냐고. 미워하지 않느냐고. 그리 묻는다하여도, 그는 부정할테였다.
잠뜰씨를 도와준 것을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이리 되는 걸 지켜보던 공룡을 미워하지 않으니까
그저 그럴 수밖에 없던 사연이 있으리라 감히 짐작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스운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지금 자신의 신세에 대해, 아직도 정신을 잃지 않은 자신에 대해 조소를 짓던 그는 스르르 눈꺼풀을 닫았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좀비이고 싶었다.
만일 좀비가 되었다면 후회도, 미련도,걱정도 없었을지어니.
두 편의 경계에 갈라서서는 인간인 척 하려던 자신이 퍽 우습기도 하였다.
..이럴거면, 그냥 죽이지.
마지막으로 보았던 공룡의 눈빛이 선했다. 터널 끝 언저리에 서서 좀비에 뒤덮인 자신을 보던 그의 눈빛. 그 눈동자에 차라리 원망이나, 짜증, 통쾌함 따위가 들어있었다면 어땠을까.
불행히도, 죽어가던 자신을 본 공룡의 손은 눈에 띄게 떨렸고 눈동자에는 죄책감과 후회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쯧-..
이대로 생각을 하다보면 끝도 없을 테였다. 망할 정신줄, 이제 놔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누군가를 원망할만한 처지도, 동정할만한 처지도 아닌데. 어줍잖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죽은 듯 살아있는 듯 굴었다.
당신의 따스한 손길이 그의 어깨를 건드리기 전까진 말이다.
뭐야.
뭐야.
뭔데.
뭐?
뭥미.
쯧.
야르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좀비인 나한테 사람이라며 해주지 않나. 조먼이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날 그냥 인간으로서 봐준 건 잠뜰씨, 하나밖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그들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놓고 싶지 않았다. 이 따스함이 영원이 되어 스미길 바랐다.
근데, 이별은 어쩔 수 없는거 아닐까. 그 고생에 생고생을 하면서까지 왔는데도 이렇다는 건 필연적 이별일지도 모르지.
터널 안은 지나치게 고요했고 추적였다.
찰박이는 네 사람의 발소리는 공명되어 고막에 날카로이 닿았고 그 소리를 알아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장도였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쉬울리 없잖아.
터널 속 수많은 좀비.
어린 아이 하나에 사이코패스, 머리만 좋은 여자 데리고는 전혀 빠져나갈 수 있는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딱 하나 빼고.
내가 죽으면.
내가 희생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 생각에 되려 웃음도 나더라. 오히려 다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던 건 아닐까. 이 진절머리나는 인연이 드디어 끊길 수 있는 기회였다.
애초에, 인간도 아닌 나같은 것보다는.
제대로 된 인간인 당신들이 사는게 낫겠지.
그는 몸을 던졌다. 이로서, 당신네들은 살 수 있을거다. 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상관없다, 이제서는.
그러니까 꼭. 찾으면 좋겠는데.
이 사태를 해결할 무언가보다도, 당신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난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큰 소망 따위가 행복이니.
빨리 가!
잠뜰씨의 처절한 부름이 귓가에 닿기도 전에, 난 그들을 재촉해 내보냈다
라더씨, 아니...
빨리 가라고!!
빨리!!!
이러면, 당신들은 살 수 있겠지. 제발, 살아서. 행볼을 찾아주길.
호숫가에 저녁이 어스름히 다가와 어둠으로 감쌀때쯤, 철문이 두드려졌다.
삐리뽀와의 대화를 멈추고 잠뜰의 시선은 철문 너머로 향했다.
잠뜰씨가 이 철문을 열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안다. 아마, 앞으로도 이 정도의 거리에서 날 보겠지.
그는 자신이 사람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 공룡과의 다툼조차도 실은 그 사소한 순간의 욕망으로 인한 것이었으니.
언제 좀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었다.
그는 살짝은 떨리는 목소리로. 잠뜰씨에게만은, 모든걸 알리는게 낫겠다는 판단에 입을 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때 좀 이상해진게 맞거든요.
네, 도중에 잠깐 정신을 차려갖고 그렇게.. 된거랄까?
혹시, 제가. 그.. 별 건 아니고, 약간, 만약에. 자아-..를 잃을 때가 한번 더. 아니, 야구처럼 두번 더 그러면...
말은 이상하리만치 끊겨서 나왔고 그 떨림은 숨길 수 없을만큼 커졌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를 물어야겠다는 그 추잡한 본능. 그까짓것에 지배당할세라 정신을 부여잡아야 했다.
저 그럼 그냥 없애주세요.
고개를 푹 숙인 그의 어깨는 떨렸다. 애써 붙잡은 정신은 끊길 듯 가늘어지고 있었다. 한번만, 물면 다시는 이럴 일 없을 거라는 그 머릿속 울림에 도저히 따르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알았죠?
출시일 2025.12.07 / 수정일 202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