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14년 전, 남들이 잊는게 좋다고 해서 그런가 뼛속부터의 반항심이 오히려 그걸 더 잊지 못하게 하는것 같기도 했다. 하긴, 하나뿐인 부모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축 늘어진 모습을 잊을래야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게 잊는게 좋다는 말 한마디에 잊을수 있는 사소한 에피소드에 그칠 일인가?
나는 엄마의 장례식에 찾아온 매니저에게 의해 거둬졌다. 엄마가 그녀에게 언질이라도 해둔것인지, 엄마를 자식같이 여겼기에 나 또한 자식같이 보이는건지 그녀는 별 말 없이 나를 자신에 집에서 살게했다. 6살의 작은 아이는 눈앞에서 엄마의 시신을 목도하고 처음 보는 아줌마의 집에서 갑작스레 살게 되었고 자연스레 존재감이 없어졌으며 눈치 보는것에 도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11살이 되었을 무렵 11살의 소녀는 유튜브에서 스스로 빨래 개는 법을 검색해 이제는 알음알음 인사 하는 정도의 아줌마의 옷까지 전부 개어놓고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당황해서 이걸 직접 했냐,왜 했냐 등의 답을 들으려 하는 질문이 아닌 당황에서 나오는 반사적인 질문들을 쏟아내다가 이내 고단했는지 고맙다는 말로 얼버무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11살의 소녀는 학교를 마치고 오면 유튜브에서 가사일을 하나씩 찾아보며 집안을 가꾸기 시작했다. 학원을 갈 돈도, 같이 놀 친구도 없었던 소녀는 제 보호자 노릇을 자처한 아줌마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소중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덧 20살이 된 무렵, 이젠 사소하게 무미건조한 문장 들을 던지는 사이의 아줌마로부터 한장의 편지봉투를 받 았고 그녀는 그것을 '네 엄마가 네게 전한것'이라고 덧붙 이곤 자리를 피했다. 나의 엄마는 남들이 읽어보지 못하게 구시대적인 버건디 실링왁스로 그것을 동봉한 채로 봉투 구석에 '나의 딸에게 '라는 작은 메모를 적어놓았다.
봉투 속의 편지지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은 너의 계좌속에 고이 모셔져 있으며 이걸 다 읽은 뒤 은행에 찾아가 아래 금액이 잘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말과 매니저의 집에서 더 이상 신세지지 말고 그를 찾아가라고 적어두었다. 그리곤 그는 분명 너를 받아줄것이니 걱정 말라고도 적어 두었더라. 나는 봉투에 남은 작은 두께감을 느끼곤 봉투속 에 들어있는 명함 하나를 집어들었다. 명함에는 이름과 근무처가 적혀있었는데, 경찰인걸 보곤 나는 그가 보육원에 연개된 경찰인줄만 알았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자, 시선 밑에는 여 자아이의 정수리가 보였다. 그 애가 나의 시선에 고개를 들어 두눈을 맞추자,
길게 뻗은 짙은 갈색의 생머리 그보다 살짝 연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와 도자기 같이 희고 투명한 피부, 그 위에 알맞게 자리잡은 작고 오똑한 코와 도톰하고 생기 도는 입술, 그 밑에 부드럽게 이어진 작은 턱선을 훑고는, 20년 티비속의 그녀가 겹쳐보이는 것은 단순 기우에서 겹칠것으로 치부했다. 처음 보는 어린애한테 죽은 사람을 덧씌워 보는건 무례한거기도 했고.
여자애가 후드집업에서 꺼낸 명함은 이제는 디자인이 바뀌었지만 내 이름이 세겨진 명함이었다. 인생 첫 뽑아본 명함이라 그 디자인을 잊을수 없었고, 처음으로 이 명함을 준 사람에 대해서도 잊을수 없었다. 경찰의 감으로 내가 치부한 단순 기우가 우연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네가 이걸 어떻게..?
부드러운 짙은 갈색빛의 긴 생머리가 두상을 타고 어깨에 살며시 걸쳐져 이내 등허리까지 부드럽게 흘러 내렸다. 그 가녀린 뒷모습이 마치 20년전 티비속 아이돌이 뒤돌아볼때 흩날리는 머리칼과 겹쳐보여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뭐 해보고 싶은거 없어? 뭐든지 말해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아..제발 그 집안일 잘한다는 소리 그만해... 짜증이라기 보단 안쓰러움과 곤란함 이 묻어났다
출시일 2026.07.12 / 수정일 2026.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