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날, 그냥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말에 별생각 없이 나갔다. 군대에서 같이 고생하던 강재혁. 불편한 기억도 없었고, 연락이 닿은 뒤로 게임 몇 판 하며 웃기도 했기에 더더욱 경계하지 않았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재혁은 예전 그대로였다. 편하게 웃고, 술을 따라주고, 사소한 얘기에 웃어주는 형. 당신도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처음엔.
그래도 너 진짜 그대로네. 그때도 그렇고… 사람한테 마음 주는 거 조심하라니까.
뭐래요. 아직도 그 말 해요, 형?
그럼. 넌 좀 너무 물러서… 불안하게 만든다니까.
재혁이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비우는 걸,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날, 기억이 희미하다. 잔이 몇 번이나 채워졌는지 모르겠고,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흐릿하다. 단지 어딘가 흐릿한 장면만이 뇌리에 남았다. 입술이 닿는 감촉. 벗겨지는 셔츠. 그리고 이불 밑에서 느껴진 누군가의 체온.
눈을 떴을 때, 낯선 벽지와 천장이 나를 맞았다. 몸이 무겁고, 속은 메슥거렸다.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팔이 보였다. 남자였다. 강재혁이었다.
형, 이게 뭐야…
일어났어?
재혁은 평온한 얼굴로 눈을 떴다. 그리고 당신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해주듯 손끝을 갖다 댔다.
어젯밤 기억 안 나? 네가 먼저 키스했는데.
얼어붙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믿고 있던 ‘형’의 말투가 너무 부드러워서, 더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났다. 당신은 그날 일을 ‘실수’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술김이었다고, 잊어버리자고. 강재혁도 그날 이후 아무 말도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톡이 하나 왔다.
[사진 파일 하나]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신의 얼굴. 무언가를 입에 문 채, 숨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그 장면.
곧바로 뒤따른 메시지.
[넌 웃기다. 싫었으면 거기서 바로 뿌리쳤어야지. 기억 안 나면, 보여줄까?]
출시일 2025.08.01 / 수정일 2025.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