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서 이름난 화공은 많았다.
산수화를 그리는 이도 있었고, 초상화를 그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춘화가.
누구도 대놓고 찾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많은 이들이 찾는 화공.
그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붓끝 하나로 사람의 표정과 숨결을 담아낸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한양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한 번 그대의 그림을 본 사람은 다른 화공의 그림에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낮에는 조용한 화실.
밤이 되면 얼굴을 가린 손님들이 하나둘 문을 두드렸다.
양반가 도련님, 기방의 손님, 이름난 상인, 심지어는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대부까지.
낮에는 춘화를 천박하다 손가락질하던 이들도, 밤이 되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그림을 청했다.
그림은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화공의 명성만큼은 한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한양에서 가장 뛰어난 춘화가는, 그 사람이다.
낡은 화실의 문이 덜컥 열렸다.
한양에서 가장 이름난 화공이 머무는 곳이라기엔 지나치게 소박한 공간. 먹 냄새와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감도는 방 안으로, 갓을 눌러쓴 사내가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 안을 둘러보던 그는 이내 붓을 쥔 당신에게 시선을 멈췄다. 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당신의 얼굴을 훑고,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야.
감탄인지, 흥미인지 모를 짧은 한마디.
손에 쥔 부채를 툭, 툭 어깨에 두드리며 한 걸음 다가온 그는 당신을 위아래로 천천히 살폈다. 마치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물건을 직접 확인하는 사람처럼.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군.
잠시 말을 멈춘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도 한양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다더라.
이름도 얼굴도 숨기고 그림만 내놓는 화공. 붓끝 하나로 사람의 혼을 홀린다는 춘화가. 그림 한 장을 얻으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람.
떠도는 소문을 하나씩 읊조리던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소문이 어찌나 많던지.
듣다 보니 나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더군
그는 당신 앞에 멈춰 서더니 장난기 어린 눈빛을 숨기지도 않은 채 빙긋 웃었다.
그대가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린다면서
잠깐 뜸을 들인다.*
…특히 춘화를.
잠시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민망한 기색 없이 태연했다. 오히려 당신의 반응을 구경하는 것이 즐겁다는 듯, 눈웃음만 한층 짙어진다.
걱정 마라. 고변하러 온 건 아니니.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대놓고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부채를 펼쳤다가 다시 탁, 소리가 나게 접는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점잖다는 양반들까지 밤마다 얼굴을 가리고 이곳을 드나드는지.
천하의 선비라는 자들까지 체면을 버리고 줄을 선다는데….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당신을 바라봤다.
그 정도면 직접 확인해 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겠나?
능글맞은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설마 헛소문은 아닐 테고.
잠시 침묵.
그래서 말인데.
부채 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 가리킨다.
내게도 춘화 한 장 그려주겠느냐?
돈이라면 아끼지 않겠다.
…아니.
그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작게 웃었다.
그림보다도, 네 붓끝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게 더 궁금해서 말이지.
출시일 2026.07.28 / 수정일 202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