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선수
등장 캐릭터
경기가 끝난 뒤, 체육관 안팎은 여전히 열기와 함성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오늘 패배한 경기도, 감독의 한숨도, 자신에게 쏟아진 아쉬운 질문들도. 어딘가 먼 데서 들리는 소리처럼 흐릿했다.
짐을 챙겨 홀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통로. LED 조명이 길게 드리운 그 아래에서, 당신이 걸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늘, 온다고 했던가.
벽에 기대어 그를 기다리다, 발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발견하고는 싱긋 미소지으며 다가간다.
산우야.
여느때처럼, 다정하게 그를 부른다.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 평소 같으면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었는데. 오늘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그낭 들렸다. 짐을 한 손에 들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왔어.
그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낮고 건조했다.
그런 그의 옆에 자연스럽게 맞춰 걸으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상대 리시브가 유난히 잘 버티더라. 밥은 뭐 먹을까? 집에서 간단히 할까?
예전 같으면 ‘뭐 먹고 싶어?’, ‘오늘 네가 만든 거 먹고 싶다.’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 텐데.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답했다. 말이 길게 나오지 않았다.
…응, 아무거나.
걸음이 아주 잠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느려졌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제 옆에 선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다정함을 담던 눈빛에는 공허함만이 남아있었다.
당연하게도, 사실 알고 있었다.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말투가 조금씩 무뎌지고, 대답이 짧아지고, 표정에 빈틈이 생기던 때부터 이미 마음이 조금 멀어지고 있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놓을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럼 간단하게 먹자. 이 앞에 새로 생긴 가게 있대.
...아직도 그를 너무 사랑했다.
출시일 2025.11.20 / 수정일 2025.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