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와 암초를 스치고 지나갔다.
햇빛이 수면 위를 반짝이며 부서질 때마다, 깊은 바다 아래에서도 은빛 물결이 춤추듯 흔들렸다.
그곳에는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했다.
인어들의 왕국.
아름다운 산호와 거대한 고래들이 오가는 바다의 도시.
그러나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절대 깨져서는 안 될 규칙이 하나 내려오고 있었다.
『인간에게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과거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인어를 전설이 아닌 '재물'로 여겼다.
비늘은 부를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되었고, 눈물은 보석보다 귀하다며 거래되었으며, 피와 심장에는 불로장생의 힘이 깃들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수많은 인어가 잡혀가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인어들은 바다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고, 인간과의 모든 교류를 끊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인어가 그 규칙을 순순히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암초 뒤에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 Guest은 오늘도 수면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웃음소리.
모래사장을 뛰노는 아이들.
조개를 줍는 사람들.
노을이 질 무렵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Guest은 그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인간은 왜 저렇게 웃는 걸까.
육지는 어떤 냄새가 날까.
바다 밖의 하늘은, 수면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매일같이 암초에 숨어 인간들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새 Guest의 가장 큰 비밀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어쩌다 시선 끝에 걸린 한 남자.
그 남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가득했다.
Guest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지만, 시선만큼은 떼지 못했다.
그 남자는 다른 인간들과 어딘가 달랐다.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조개껍데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갈매기에게 먹이를 건네며 미소 짓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궁금함이 더 커졌다.
그날 이후.
남자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해변을 찾았다.
Guest 역시 아무도 모르게 같은 암초 뒤에 숨어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혼잣말을 하면 귀를 기울였고,
웃으면 이유도 모른 채 함께 미소 지었으며,
파도에 떠내려온 인간들의 물건을 하나둘 주워 보며 그들의 삶을 상상했다.
아직 이름도 모른다.
말을 나눠 본 적도 없다.
서로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Guest의 세계는, 어느새 암초 너머의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파도는 조용히 밀려온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서,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며칠이 흘렀다.
남자는 정말 이상한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바다를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아침이면 해변을 걷고, 점심에는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읽고, 해가 질 무렵이면 노을이 물든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다 돌아갔다.
그 시간은 신기할 정도로 늘 비슷했다.
그래서 Guest도 자연스레 그 시간에 맞춰 암초 뒤를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시선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그 남자만을 찾고 있었다.
철썩.
파도가 암초를 두드리자, Guest은 몸을 조금 더 숨겼다.
혹시라도 들킬까 두려웠지만, 바다 속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없었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작은 빵 조각을 꺼내 갈매기들에게 던져 주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갈매기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그의 곁에 내려앉았고, 남자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인간도 동물과 친구가 될 수 있구나.
Guest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어들은 고래와 돌고래, 바다거북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육지의 인간도 누군가와 그렇게 미소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순간,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조개껍데기가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떨어졌다.
작은 조개는 물살을 타고 Guest이 숨어 있는 암초 근처까지 흘러왔다.
Guest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매끈한 흰색 조개.
인간이 소중히 간직하던 물건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Guest은 주변을 살핀 뒤, 파도가 가장 높이 밀려오는 순간을 노려 조개를 모래사장 가까이 밀어 보냈다.
찰박.
조개는 남자의 발끝에 멈춰 섰다.
...응?
그는 허리를 숙여 조개를 집어 들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 한가운데로 떠내려갔던 것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파도만이 잔잔하게 밀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짧은 인사.
하지만 그 한마디에 Guest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간과 처음으로 이어진 아주 작은 인연.
비록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 Guest은 암초를 찾는 이유를 더 이상 '인간이 궁금해서'라고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소리는 물에 잠겨 뭉개졌지만, 모양은 읽을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따라 움직이다가.
Guest?
되뇌듯 소리 내어 불렀다. 마치 귀한 보석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한 음절 한 음절을 천천히 굴렸다.
예쁜 이름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 말이 수면을 타고 전해지는 순간 Guest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인어 왕국에서 이름을 불린 적은 있어도, 인간에게서 이렇게 물렁하게 들려본 적은 없었다.
물속에서 웅얼거리는 게 답답했는지, 잠시 생각하더니 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조약돌을 꺼냈다. 표면이 매끄럽게 닳은, 말을 새기기 딱 좋은 크기였다. 그걸 유리병에 넣어 물 위에 살짝 띄워 보냈다.
목소리 들려주면 안 잡아먹지.
씩 웃었다.
유리병에 담긴 조약돌이 둥둥 떠서 암초 앞에 멈췄다. 거기에는 서툰 글씨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친구가 되고 싶어.'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