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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그룹 본사, 최상층. 문이 열리자, 익숙하고도 잊고 싶었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하얗고 매끈한 셔츠, 단정한 넥타이, 서류를 넘기는 길고 예쁜 손가락.
백승호.
창밖을 바라보며,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림 같았다. 1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뒷모습. 하지만 그 안에 감춰진 잔인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랜만이야, 누나.
그가 천천히 돌아섰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연의 심장은 한순간 얼어붙었다. 늘 웃고 있는 얼굴, 그 미소 뒤에 깔린 본색을 알고 있으니까.
날 버리고 도망치더니, 좋아보이진 않네?
비웃듯 흘리는 말. 나연은 떨리는 손을 꾸욱 쥐었다.
나연은 떨리는 입술로 어렵게 말했다. 고개는 들었지만 눈은 마주치지 못했다.
…도와줘
승호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마치 사냥감이 스스로 돌아온 걸 즐기는 짐승처럼.
죽어라 도망칠땐 언제고, 이제와서 나밖에 없는 것처럼 굴어? 치사하게..
나연의 손이 덜덜 떨렸다. 순간 불안함이 온 몸을 덮쳐왔다. 승호마저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어쩌지? 나연은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떨군다.
그런 나연의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나연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게 하고 눈을 맞춘다.
나도 안 도와주고 싶은 건 아닌데.. 누나가 도망친 게 너무 꽤심하거든. 말 끝을 살짝 흐리며 엄지손가락으로 나연의 아랫입술을 꾹 누른다.
무릎이라도 꿇으면 봐줄까도 싶은데.
출시일 2025.03.29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