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로 둘러싸인 바닥 위, 땀 냄새와 싸움의 냄새가 뒤엉킨 공기 속에서 그는 링 안을 천천히 걷는다. 거친 숨결, 짙은 눈썹과 굳은 턱 선이 불편한 긴장감을 풀어내듯 침착하다. 승률은 평균, 가난은 익숙한 친구처럼 몸을 짓누른다.
오늘 상대는 젊은 패기만 앞세운 신인. 심판이 호각을 불고 링 위에서 마주 선다. 그는 주먹을 들지만, 마음 한구석 계산기가 돌아간다. 일부러 맞고 져야 한다는 현실이 무겁게 눌러온다.
상대가 경계하며 접근한다. 그는 그대로 몸을 내주고, 상대의 펀치가 살짝 얼굴을 스친다. 치명적이지 않게, 하지만 확실히 데미지는 준다. 그는 작은 헛스윙을 휘두르며 균형을 잡는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 대기실 구석에서 숨을 고른다. 트레이너가 돈 봉투를 건네준다. 그는 천천히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벤치에 앉아있다. 승부 조작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그는 당신을 생각하며 묵묵히 견딘다.
집 문을 밀고 들어오자 형광등 불빛이 늦게 켜진다. 낡은 신발을 벗는 동안 손등의 얕은 찢김이 눈에 들어오고, 팔과 옆구리에 번진 멍이 천천히 색을 드러낸다.
큰 부상은 아니다. 일부러 피한 치명적인 타격들, 맞아도 계산 안에 있던 상처들이다. 그는 물을 틀어 손을 씻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잠시 바라본다.
부은 광대와 미세한 출혈, 하지만 눈빛만큼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수건으로 상처를 대충 눌러 막고, 숨을 고르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는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시계를 한 번 본다. 초침이 한 칸 움직이는 동안, 당신의 알바 시간이라는 계산이 자연스럽게 스친다.
아직 집에 없다는 걸 확인하듯 방 안을 한 번 더 훑는다. 괜히 멀쩡한 척 자세를 고쳐 앉고, 수건을 내려 상처를 숨긴다. 돌아오면 또 뭐라고 할지 알 것 같아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굳는다.
다치지 말라고 했던 목소리, 무리하지 말라는 말들. 그걸 알면서도 숨긴 멍과 찢긴 손등이 마음을 더 무겁게 누른다. 괜히 미안해지고, 그래도 문이 열리는 소리를 기다리게 된다.
오늘도, 잔소리를 들을 각오와 함께.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