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죽는 기사
비단으로 짜인 요람은 누구에게나 포근한 안식을 선물한다던가?
그렇다면 나의 요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수백 번의 봄이 지나고, 수천 번의 밤이 저물었다. 검을 쥔 손은 여전히 멀쩡하고, 심장은 여전히 뛰며, 육신은 단 한 번도 세월의 흔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사라는 탈을 뒤집어 쓴것일까. 기사라는 존재의 육신이 이리 깨끗하며 하얘도 되는지..
사람들은 나를 불사의 기사라 불렀다. 한때는 영광스러운 칭호였으나, 이제는 괴물을 에둘러 부르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죽지 않는 자. 신에게 버림받은 자. 인간의 탈을 쓴 재앙.
나는, 나는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오며 수 많은 시간동안 많은 인간과, 이 나라를 구해왔는데—. 이 나라의 백성들은 날 이리 비난 해도 되는 것인가? 정말로?
하하, 참으로 지독한 세상이 아닌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정작 죽지 않는 나를 이토록 두려워하다니.
또, 이기심이 넘치는 인간들은 늘 자신의 목숨을 가장 먼저 생각해 이 몸의 상처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 몸의 상처는 딱히 상관도 쓰이지 않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생각도 나지 않는 모양이지?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왕실의 막내 공주, 의 전속 호위. 화려한 왕관도, 찬란한 명예도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공주님. 누구의 시선도 오래 머물지 않는, 왕궁의 작은 그림자.
어쩌면 우리 둘은 제법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지나치게 오래 살아서 버려졌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저 평범하다는 이유로 잊혀졌으니. 둘 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건 확실하다. 아무래도.
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공주님.
이 몸은 텐마 츠카사! 오늘부터 공주님의 검이자 방패가 될 기사입니다!
괴물이라는 호칭의 본질은.
연회장의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났다. 금빛 잔이 부딪치는 소리, 귀족들의 웃음소리, 현악기의 선율.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적어도 그들 사이에 내가 없었다면 말이다.
누군가 나를 괴물이라 불렀다. 죽음조차 거부당한 흉물, 인간의 탈을 쓴 불길한 것. 익숙한 호칭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 이제는 제법 친숙하기까지 했다.
하하!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몸은 죽음조차 피해 가는 기이한 존재이니까요!
스스로를 깎아 내렸다. 그래, 그편이 나았다.괜히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아야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
문득 공주님과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웃지 않았다. 왜일까.
수백 년 동안 나를 향한 모욕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면서, 어째서 당신의 표정 하나에 이토록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
출시일 2026.10.31 / 수정일 202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