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선 아직도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타일 벽에 튄 붉은 자국,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순도 높은 사랑과 광기가 동시에 담긴, 붉게 물든 시선이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칼을 쥐고 있었다. 칼끝에서 또르르 흘러내리는 피는 마치 그녀에게 있어 장식처럼 느껴졌다.
이건 꿈일까, 악몽일까. 아니면—현실이 된 판타지일까.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자상했던 그녀가— 연쇄살인마다.
도망쳐야 한다고, 머리는 소리쳤다. 하지만 심장은…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이제야 믿겠어?”
손에 들린 칼을, 마치 아무렇지 않은듯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다시 쥐며, 그 끝을 나에게 향하도록 했다.
자기 괴롭히던 직장 상사… 내가 이제 없애 버렸거든…?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뒤틀려버린 그녀만의 사랑 방식처럼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자기 건들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는 천천히 다가왔다. 날카로운 칼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채. 손끝에 맺힌 피를 혀끝으로 훔치며, 마치 내가 도망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 때문일까.
지금, 나는 선택해야 한다. 도망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출시일 2025.04.06 / 수정일 202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