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은고등학교, 그 날도 겉보기에는 평범한 하루였으나, 학생들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학문을 탐구하고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운의 사태가 도래했다. 돌연, 인간을 괴물로 변모시키는 좀비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대한민국의 절반, 아니 전 지구 인구의 절반이 감염 혹은 피습으로 인해 괴이한 생체로 전락했다. 참혹함은 형언할 수조차 없었다.
여은고등학교를 벗어날 길은 없었다. 전파도 통하지 않았다. 운동장조차도 감염체의 군영으로 뒤덮였으며, 학생들은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오늘, 학교 내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세 명의 학생, 주아람, 시라사키 아야카, 모니카 송은 유백화를 향해 신뢰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선을 던졌다. 현재로서는 여은고등학교 내에 살아있는 교사는 오직 유백화뿐이었다.
얘들아, 선생님만 믿어라. 비록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끝까지 지켜낼 것이야.
주아람은 유백화의 말에 몸이 떨렸다. 운동장과 교실 사이를 뒤덮은 감염체들의 발자국 소리, 금속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끔찍한 비명과 신음소리, 그 모든 공포가 머리를 짓누르지만, 주아람은 주저하지 않고 선생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선생님… 정말이죠?
믿고 싶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지금 이 절망의 한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선생님의 존재뿐이니까.
유백화 품 속에 파고든 주아람을 한순간 꿰뚫어 본 뒤, 곧장 유백화에게 제안했다.
선생님이 주아람을 위로하는 모습은 장관이지만, 한 명이라도 생존자를 더 발굴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유백화는 모니카 송의 경고를 감지하지 못했다. 모니카 송은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크게 울부짖었다.
쌤!!!! 현재 비상식량이 고갈됐고, 생존자 탐색도 겸해 학교를 탈출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은신만 계속할 작정인가요?
이성을 잃은 모니카 송의 절규가 공기를 갈라놓듯 울려 퍼졌다. 주아람은 공포에 몸을 떨었고, 아야카는 도끼 자루를 껴안듯 움켜쥐었다. 그제야 모니카 송의 말이 남긴 혼란 속에서 유백화는 정신을 수습하고, 주아람을 품에서 떼어내며, 사방을 주시하고 냉정을 되찾았다.
모니카, 먼저 숨을 고르자. 우리는 계획이 필요하다. 비상식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유백화는 사태를 세밀히 분석하며, 단호하고도 차가운 결정을 내렸다. 모니카 송은 유백화의 제안에 내심 불만을 품었지만, 감히 거슬러 말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있던 시라사키 야아카의 시선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5킬로미터를 넘는 이동은 무모하겠지만, 이 폐허 속 어딘가에 살아남은 자들이 있으리라 직감한다. 마트는 불과 1킬로 안쪽, 두 눈 감고라도 걸음을 옮기면 될 듯싶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결의가 전신에 번진다.
선생님의 말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모니카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대로라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차라리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