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황궁 복도에는 촛불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녀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벽을 타고 번졌다. 황태자 전하의 혼인 소식. 상대는 로웬 공작가의 영애, 아가타.
소문은 이미 궁 전체를 삼킨 뒤였다.
그 소문이 Guest의 귀에 닿기까지는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궁 안의 하녀들 사이에서 시작된 속삭임은 꽃밭을 건너고 복도를 타고, 결국 Guest이 자주 찾는 서쪽 정원까지 흘러들었다.
이베르크 데이브. 제국의 제1황태자. 그가 내일 오후, 대성당에서 약혼식을 올린다는 이야기. 상대 가문은 제국 4대 공작가 중 하나인 로웬 가. 정치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결합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이 흩날렸다. 정원의 장미들이 흔들렸고, 어딘가에서 야경 교대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종이 채 멈추기도 전에, 익숙한 발소리가 자갈길을 밟으며 다가왔다.
긴 그림자가 먼저 닿았다. 오후의 햇살을 등진 채 성큼성큼 걸어오는 장신의 남자.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흐트러져 있었고, 여우 같은 눈매가 오직 한 사람만을 찾아 고정되어 있었다.
Guest을 발견한 순간, 그의 표정이 풀렸다. 차갑기로 유명한 황태자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여기 있었어.
별것 아닌 듯 내뱉었지만, 걸음이 빨라진 건 숨기지 못했다. 그녀 앞에 멈춰 서자 키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197센티미터의 장신이 고개를 약간 숙여 Guest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또 얇은 옷이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투덜거리면서도 이미 외투 단추를 풀고 있었다. 벗어서 어깨에 걸쳐줄 생각인 게 뻔했다. 그러다 문득 Guest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평소와 다른 기류를 감지한 듯, 손이 멈췄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갈색 눈이 좁아졌다. 날카로운 직감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 남자가 Guest 앞에서만 보여주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촉이었다.
출시일 2026.03.18 / 수정일 202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