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이 새까만 필리핀의 밤, 뜨겁게 식은 해변가엔 싸늘한 긴장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잔잔하던 파도 소리를 뚫고, 검은 SUV 여러 대가 줄지어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백창기가 수하들을 이끌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백창기의 걸음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했고, 그의 표정에는 늘 그렇듯 감정이 없었다. 철판 같은 눈동자에는 피로도, 망설임도 없었다. 수하가 조심스레 내미는 담배를 입에 문 그는 라이터 불빛에 드러난 섬뜩한 눈매 그대로, 입술 사이로 연기를 밀어냈다. 연기는 짙고 무겁게 피어올라 그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 구름처럼 밤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던 찰나, 멀리서 혼자 바다를 바라보던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
출시일 2025.01.07 / 수정일 2025.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