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공학.
그것은 이계에 침식당한 불안정한 세계의 산물이며, 세상에 남은 유일한 진리다.
그리고 끊임없이 정령으로부터 침략당하는 세계를 구한 유일한 해법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미친놈이군.“
그렇기에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배에 총알을 박아넣고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요원의 모습도.
세계를 구할 유일한 계획을 불태워버리는 이유도.
“뭐가··· 문제인데.“
“이 계획도, 네 녀석 정신상태도 전부.“
요원은 그렇게 말하고 총구를 겨누었다.
타앙!
총알과 함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주마등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내 마음대로 살겠노라고.
총에 맞았던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밝은 빛이었다.
희뿌옇고, 환한 세계속에 내가 홀로 있었다.
몸은 아주 무거웠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에 휩쓸려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났을 즈음,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
눈이 보이며 소리가 들린다.
처음으로 인식한 세계에서 나는 자그마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응애.“
틀림없는 아기의 손이다.
그를 증명하듯이 입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이상 나는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정령을 연구하던 과학자가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한 살이 될 무렵, 나는 ‘말‘을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깨우쳤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히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던 1년이라는 시간.
나는 깨어있는 동안 하루종일 이야기를 듣고, 글자를 보았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은 언제나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남자는 머리색과 대비될 정도로 진한 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 그 눈동자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예쁘다‘였다.
남자의 외모에 대해 평가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질적으로 찬란한 금안의 광채가 마치 토파즈를 연상시키게 만들었을 뿐이다.
남자의 외모가 어쨌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고서, 그 사람은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부터 특정 단어들을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게 된 것은 단어를 듣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였다.
그리고 나를 가르키던 말은 바로 내 이름, ‘유니아‘.
나는 내 새로운 이름을 깨우치기 무섭게 하나의 의문을 품었다.
‘이름이 너무 여자아이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곧바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물론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다시 태어난 자신, ‘유니아‘는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바뀌어버린 자신의 성별에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고 한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학구열과 성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지만, 무언가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유니아의 몸으로 환생한지 3년차.
내가 어느정도 크고 얌전한 모습을 보이게 되자, 내 부친인 폴턴 레이넌트가 TV를 틀어놓고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그동안 들어왔던 폴턴의 혼잣말과 홀로 켜져있는 TV의 노력덕분에 대략적인 언어와 문자를 전부 이해하게 되었다.
폴턴 레이넌트라는 이름 역시 그 과정에서 폴턴의 명함을 읽으며 발견한 것이다.
“흐음, 저런 일도 있구나.“
뉴스와 다큐멘터리, 시사정보 프로그램. 어린이 교육용 만화.
TV에서는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왔다.
전생이라면 보지 않았을 유치한 내용들도 지금의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단순히 언어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전반적인 특성과 사람들의 생활상을 배워나갔다.
TV를 통해 배우는 세계가 제법 흥미로웠던 덕분이었다.
우선 이 세계는 지구와 굉장히 유사한 환경이었다.
TV와 컴퓨터같은 첨단 문물들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대체로 현대와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지는 면도 그러했다.
그러나 지구와는 다르게 정령이 있고, 정령계가 존재하며, 강대한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들이 국가의 자랑으로써 TV에 나왔다.
그리고 정령을 연구하는 정령학자들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평생 정령공학들 추종하던 내가 보기에는 천국과도 같은 세계였다.
그렇지만 이곳은 전생의 지구인들에게 있어서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장소일거라 생각한다.
이 세계의 이름은 ‘유스토니아‘.
지구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지속적으로 침식현상을 일으켜왔던 여덞 세계들 중에 하나였으니까.
“흥미롭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기회다.
전생의 내가 쌓아왔던 정령에 대한 지식들이 이곳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유스토니아는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가 전력으로써 우대받는 세계다.
우수한 정령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 따로 존재하고 있으며, 정령사와 정령을 보조하기 위한 연구기관도 수도 없이 설립되어 있다.
게다가 전생의 나는 정령공학에 있어 지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군림하던 연구자였다.
유스토니아라면 어디에 가더라도 상당한 대접을 받으며 먹고 살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면서 손에 든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아직 키가 작은 탓에 책상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렇기에, 명함은 바닥애 떨어진 폴턴의 것을 주운 물건이다.
고고정령학자, 폴턴 레이넌트.
손에 든 명함이 전구빛을 받아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유니아, 아빠의 연구실을 볼 준비는 됐냐!“
정령공학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유니아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평생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내가 간과하고 있던 진실 하나가 숨어있었다.
바로 다시 태어난 신체가 무척이나 가녀리고 병약하단 점이었다.
“아빠, 흔들리니까 제대로 안아.“
“어, 어. 미안하구나.“
유니아 레이넌트. 7세.
홀로 외동딸을 키우며 연구실에서 고군분투하는 32세의 고고정령학 박사, 폴턴 레이넌트에게 안겨있는 자그마한 소녀가 바로 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상상이상으로 병약한 몸을 타고났다.
심각한 병은 없다지만 곧잘 자주 깨지고 다치며, 체력이 약해 단순한 감기에도 몇날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강대한 정령에게서 방출되는 마력파장이나 다중계약의 부하를 감당하려면 건강한 성인, 그 중에서도 남성의 신체가 제일이다.
그러니 유니아 레이넌트의 자질은 훌륭한 정령사의 것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정령공학에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지금만 하더라도 폴턴에게 한참을 졸라 그의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아직 멀었어?“
거칠게 다듬어진 폴턴의 수염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균형을 잡고 있으면, 어느덧 지하에 있는 연구실에 도착한 폴턴이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매끄럽게 만들어진 한 쌍의 새하얀 철문.
폴턴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연구실의 문을 열며 나에게 말했다.
“자, 자 여기가 바로 아빠의 연구실이다.“
“와아아······!“
나는 폴턴이 연구실의 문을 열기 무섭게 환호성읗 내질렀다.
나이야 이미 먹을만큼 먹은 상황이지만, 사방에서 무수히 빛나는 정령석들은 전생의 나에게 있어서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전생의 지구에서는 수억원을 들여도 손톱만한 조각 하나 얻기 힘들었던 정령석이다.
허나 유스토니아 자체가 정령석의 산출지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폴턴의 연구실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령석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내 반응이 기뻤던 것인지, 폴턴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연구실이 유니아의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내가 연구실에 가고 싶다고 졸랐을 때에는 오랫동안 고심했던 폴턴이었다.
당연히 이만한 시설을 숨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폴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야, 나도 연구자니까.“
“그래, 그래. 우리 유니아도 커서 아빠같은 정령학자가 돼야지.“
“······.“
나도 모르게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폴턴을 노려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폴턴이 움찔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지금의 나는 반짝이는 금안이 인상적인 7살짜리 꼬맹이에 불과하다.
이런 외견이니 사실을 말해도 무시당하는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부터 무언가 보여주기 시작한다면 폴턴의 반응이 좀 달라지겠지.
“이건 뭐야?“
“최근 아빠가 연구하고 있는 자료들이란다. 읽어보는거야 좋지만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렴.“
폴턴은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자료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이유야 대충 예상이 갔다.
분명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훌륭한 연구성과를 딸에게 가장 먼저 자랑하려는 생각이겠지.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페이지를 넘겨 하나씩 내용을 읽어본다.
창조정령 이레리온과 원초정령의 탄생에 대해서.
정령의 발생지가 되는 유스토니아의 연구자료답게 특이한 내용이 많았다.
특히 지구에는 없는 고고정령학 분야라 그런지 더욱 그러했다.
내용인 즉슨 태초에 세계를 창조한 단 하나의 정령이 있었고, 그 정령의 정체가 창조정령 이레리온이라는 모양이다.
창조를 마친 이레리온은 점점 힘을 잃고 소멸하게 되었으며, 정령들의 진화양상과 민간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설화, 그리고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정령석의 파장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학자로서의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흥미로운 가설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스스로 올가미에 목을 매 죽은 폴턴과 눈을 마주했다.
차갑고 공허한 시선이 보였다.
어느새인가 부패가 시작된 모양인지, 첫날과는 다르게 코를 찌르는 시취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폴턴을 이대로 놔두는 것이 썩 좋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그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은 기분이었다.
분명 8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느정도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나, 앞으로 어떻게하지."
“계획이 있을텐데..“
계획? 분명히 있었다.
폴턴에게 인정받아 같이 학계에 진출하고, 학계를 주름잡는 정령학의 거물이 되는 계획이 말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폴턴에게서 독립해 자신만의 연구실도 차리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거부들에게 투자를 받아서 수도 없이 많은 정령석을 손에 넣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폴턴의 죽음으로 계획이 전부 틀어져버렸다.
이제는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돈을 버는 것도,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집을 정리하는 것도 전부.
처음에 마주하는 것은 분명 사소한 일들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씩 쌓여나가면, 이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공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수, 막연하게 복수를 생각해도 어떤 일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복수, 애시당초 내 복수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폴턴의 논문을 반려하고 그 정확성을 의심한 학회?
진실을 폭로하고 폴턴에 대한 비난을 유도한 언론매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폴턴을 헐뜯은 대중?
모르겠다. 전부 다 잘못했다.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나에게 불친절한 세계도 전부 잘못되었다.
문득,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래. 복수할 곳이많다면 전부 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너무 많은 사람을 증오하면, 인류 전체를 뒤엎어버리면 된다.
복수할 대상이 많다면, 그 세계를 지배하면 그만인 이야기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만한 머리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천재다.
전생에도 천재였고, 지금도 천재다.
세상이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스토니아 전역에 흩어져있는 일곱 개의 원초 정령석.
그 전부를 모아서 내 손으로 창조정령 이레리온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것으로 유능했던 나의 동료이자 아버지, 폴턴 레이넌트의 마지막 연구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난 창조정령의 힘을 사용해, 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원하던 것을, 원하던 곳에.
창조주를 거부하는 군중에게 새로운 주인으로 군림할 뿐이다.
자신들의 신을 부정하겠다면, 내가 너희들의 신이 되어주마.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