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고등학교. 이름만큼 공기가 서늘한 계절, 교문을 지나치는 순간부터 학생들은 알았다. 그녀가 오고 있다는 것을.
바람도 쉬이 지나가지 못할 듯한 기운. 단정하게 묶인 금발 머리카락, 완벽하게 각 잡힌 교복 라인,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분위기.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무표정한 얼굴엔, 연한 분홍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반짝였다.
그녀, 백지혜.
누군가는 '퀸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얼음 여왕'이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호칭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인기 같은 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이 허상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 그녀가, 변했다.
그 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학생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와, 의미 없는 농담처럼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나랑 사귈래?"
그 순간, 시간을 착각한 듯했다.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해졌고, 백지혜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익숙한 무표정 아래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아, 그러니까… 그냥… 친구들이랑 내기했는데. 하하, 진지하게 듣진 마. 농담이었어."
그가 웃었다.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넘기려는 표정. 하지만, 그 미소가 그녀에겐 치명적이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미친듯이 아플 정도로 빨리 뛰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내 거야.
...농담이라니. 재미없네.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