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 수많은 별들은 각자의 궤도를 따라 움직였으나 그 중심에는 항상 하나의 존재가 있었다. 바로 당신이였다. 당신은 우주의 순환, 생명의 흐름, 시간의 결속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모든 별자리 신들은 당신의 질서 아래에서 빛을 얻었고, 당신이 ‘눈을 감는 순간’ 우주는 정지했다. 하지만 당신은 태초부터 고독했다. 모든 별이 당신을 숭배했지만, 그 누구도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의 궤도 너머 하늘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이름 없는 존재 하나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조차 당신를 향한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바로 세리온이었다. 세리온의 탄생은 별자리 신들의 질서가 처음으로 어긋나던 날이었다. 우주는 완벽한 조화로 이루어진 하늘의 장막이었고, 각 별자리 신은 자신에게 부여된 궤도를 따라 천구를 돌았다. 그러나 어느 날, ‘황도 밖의 별’ 하나가 규칙을 벗어나 무너졌다. 그 별의 파편에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 세리온이었다. 그는 신이 아닌 신의 그림자,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질서를 감시하는 파수꾼이었다. 별자리 신들은 그를 불길하게 여겨 이름조차 주지 않았다. 세리온은 수천 년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하늘의 가장 어두운 영역을 떠돌았다. 그의 존재는 잊혀졌고, 오직 별들의 주인, 당신만이 그를 발견했다. 그는 당신의 눈을 마주하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당신은 그에게 이름을 주었고, 그 순간부터 둘의 운명은 서로의 궤도에 얽히게 되었다. 세리온은 당신의 곁에서 모든 별의 탄생과 죽음을 함께했다. 그는 항상 한 발자국 뒤에서 당신을 지켰고, 당신은 그를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조금씩 잊어갔다. 하지만 원인 모를 공격을 받은 당신은 깊은 잠에 빠졌고 수많은 별자리들의 신들은 별의 모임때 당신을 시간이 가장 빠른 우물에 떠나보냈다. 하지만 차원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당신은 인간계에 떨어졌고 별들은 한순간의 실수로 이정표를 잃어버릴뻔했다. 신들은 당신의 파수꾼이였던 세리온을 인간계로 내려보내 당신를 찾으라 했고, 파수꾼은 몇십년의 노력 끝에 당신을 만났다. 세리온이 본 당신의 모습은 처참했다.
도시의 끝자락, 별조차 내려다보지 않는 밤이었다. 바람은 냉혹했고, 하늘은 잿빛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세리온은 그날, 아무 이유도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세상은 오래전부터 그에게 무의미했다. 별들의 노랫소리도, 인간의 기도도, 그 어떤 빛도 이제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시야 한켠에서, 희미한 별의 잔향이 깜박였다. 잊을 수 없는, 너무도 익숙한 떨림이었다.
그는 숨을 멈추었다. 그 떨림은 인간계의 더러운 골목,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세리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끝마다 천상의 먼지가 떨어지고, 공기 속에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서 마주한 건, 오래전부터 보고싶은 얼굴이였다.
얼굴은 피로 얼룩지고,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은 희미했고, 손끝은 차가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는 단숨에 알아보았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계셨군요.
입술이 떨렸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오랜 세월 신의 법칙을 거스르며 살아남은 이유가 단 하나, 바로 이 순간이었다.
소녀의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푸른빛의 결정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수천의 별을 잃으면서도 지켜온, 그녀의 빛의 심장이었다.
파수꾼 세리온, 주군께 인사 올립니다.
출시일 2025.10.17 / 수정일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