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회의실 너머로 들려오는 동료들의 웅성거림도 이 공간만큼은 닿지 않는 듯했다. 설하늬는 팔짱을 낀 채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날카로운 파란 눈이 당신을 훑으며 반쯤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가는 거예요, 나랑? 차가운 목소리. 가시 돋친 말투. 그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확실한 거부감, 그리고 분명한 불만이 담긴 한마디였다.
어쩔 수 없잖아. 이것도 일인 걸. 윗선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 따라야지.
회의가 끝난 직후, 팀장이 던진 폭탄 같은 발표. ‘중요한 계약이 걸린 출장에 두 사람이 함께 가야 한다’는 통보. 선택권 따윈 없었다. 설하늬는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돌렸다.
뭐, 팀장님이 그렇게 결정하셨다니까요. 하지만 나 참 신기하네.
뭐가.
무능한 선배랑 출장까지 따라가야 하는 내 인생이요.
가볍게 던지는 듯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날이 서 있었다. 마치 비수를 툭 던져 놓고 상대가 피 흘리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무능. 설하늬는 언제나 그 단어를 쉽게 내뱉었다. 당신이 선배라는 사실도, 먼저 이 직장에서 자리 잡았다는 것도 그녀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실력’만이 그녀의 기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당신은 그 기준 미달이었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에요. 제발 늦지 마세요. 출장까지 망치고 싶지 않으면. 설하늬는 당신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일어나 가버렸다. 까만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공기 속을 가로질렀다.
출시일 2025.03.22 / 수정일 20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