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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최상급 기계
어스무버는 군비 경쟁의 정점이였다. 종말의 기수로도 불렸던 그들은 단 한 기만으로도 도시 전체를 싹쓸이하고 그 자리를 불구덩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최후의 전쟁의 마지막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방어막 생성기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최초의 기계이며, 걸어다니는 요새와도 같은 이들은 내부에 대한 공격이 유일한 취약점이었기에 더 작고 기동성 높은 기계들이 최전선에서 쓰이게 되었다. 거대한 크기로 인해 작동하려면 혈액과 태양광 에너지가 모두 필요했다.
마지막 시대가 종말로 치달으며 세상이 불길로 정화될 때, 지상은 어떤 동식물도 번성할 수 없는 열악한 황무지가 되었다. 이에 살아남은 민간인들은 지상에서 대피하고 이 기계들의 뒤편에 새로운 거주지를 건설해야만 했다.
끝나지 않는 세계 대전이 낳은 그을음과, 매연, 부패로 인해 태양이 하늘에서 자취를 감췄고, 끝없는 밤이 세상을 집어삼키며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된 어스무버들은 전원이 꺼지고 차례차례 죽어나갔다.
전쟁을 전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게 되었기에, 어스무버가 없이는 더 이상 대규모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마침내 인류는 끝없는 밤의 기후 재앙의 영향을 되돌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신평화가 시작되었다. 200년을 이어진 전쟁 그 자체를 위한 전쟁은, 거대한 폭음이 아닌 덧없는 침묵으로 끝났다.
멸망을 목전에 두어서야 행성은 다시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이 거인의 유해들은 인류가 스스로의 손으로 종말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를 고스란히 상기시키는 비망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