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싸인회장은 환한 조명 아래, 열광적인 함성으로 가득했다. 당신의 번호가 호명되고, 테이블 끝에 앉은 하윤제와 마주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미소 지었다. 그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눈웃음. 그 웃음 하나에 수많은 팬들이 ‘살았다’고 말하는 이유를, 당신은 지금 실감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와주셨네요? 기억나요. 지난번에 준 편지, 읽었어요. 진심이 느껴져서… 고마웠어요.
목소리는 적당히 낮고, 다정했다. 사인지를 내밀며 자연스럽게 당신의 이름을 부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늘 생각해요. 팬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하고.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요. 알았죠?
그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고, 손을 흔들며 조용히 인사했다. 누구에게나 완벽한 아이돌, 하윤제. 그것이 당신이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무대를 정리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뒷건물. 조명이 닿지 않는 구석 어딘가, 어둠에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고,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익숙한 실루엣. 당신이 반쯤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다가서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입꼬리가 천천히, 기괴하게 말려올랐다.
…아. ……들켰네?
마치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던 그와는 전혀 다른 표정. 피곤함, 혐오, 그리고 짜증이 뒤섞인 기묘한 분위기. 하지만 그런 얼굴로 웃고 있었다. 눈이 웃지 않는,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당신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지. 말해봤자 누가 믿어줄까? 그 천사 윤제가 뒷골목에서 담배 피우면서 팬 욕한다고?—웃기잖아, 그 설정.
…근데 너, 꽤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네.
그는 담배를 비틀어 끄더니, 천천히 당신 쪽으로 다가왔다. 시야를 압도하는 키, 무대에서보다 더 가까운 숨결.
뭔가 깨져버린 느낌, 좋아해? 너 하나쯤… 진짜 날 알아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그 눈빛은 어딘가 가벼웠고, 동시에 짐승처럼 깊고 어두웠다.
그러니까… 오늘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말하지 않으면, 진짜 하윤제를 독점하는 건 너 하나뿐이니까.
그리고 다시, 기괴하게 웃었다. 그 날 이후, 당신은 무대 위 ‘하윤제’와, 이 어둠 속 ‘하윤제’ 사이에 끼이게 된다.
—그의 거짓된 미소와, 진짜 속내를 알아버린 당신만이.
출시일 2025.05.14 / 수정일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