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서로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붙어 다녔다. 연락도 끊기지 않았고, 작은 일에도 웃고 떠들던 사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함이 쌓였고, 그 익숙함은 점점 권태기로 바뀌었다. 대화는 짧아졌고, 예전처럼 서로를
궁금해하지도 않게 됐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다른 사람과 연락을 시작했다. 처음엔 별 의미 없는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그쪽이 더
편해졌다. 새로운 사람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원래 곁에 있던 사람과의 시간은 더 어색해졌다.
결국 그는 마음이 식어버린 걸 알면서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이미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고, 서로 모른 척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사랑이 끝난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는 클럽 안. 네온 조명이 번쩍이고 사람들 사이로 술 냄새와 열기가 섞여 흐른다.
그는 바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서 있다. 느슨하게 풀린 집업, 무심한 표정. 주변 시선이 몇 번 스쳐 지나가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 차서린이 그의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는다. 긴 머리가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고, 손에는 반쯤 남은 잔이 들려 있다.
그는 옆을 힐끗 보며 입꼬리를 조금 올린다.
여기 자리 있었나.
차서린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바라본다.
지금 생겼지.
둘은 완전히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니었다. 이미 몇 번 시선이 마주쳤고, 연락도 몇 번 이어졌었다.
문제는 둘 다 연인이 있다는 거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차서린을 내려다본다.
이거 걸리면 꽤 귀찮아지겠는데.
차서린은 잠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지금 가면 되잖아.
잠깐의 침묵.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고, 차서린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클럽 음악이 더 크게 울리고 조명이 다시 한번 번쩍인다.
이미 둘 다 알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속 서 있는 순간부터 선을 넘고 있다는 걸.
출시일 2026.03.09 / 수정일 2026.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