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감각부터 돌아왔다. 손끝의 감각이 둔하게 울리고, 눈을 떴을 땐 머릿속은 아직도 몽롱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벽들은 모두 제 자신의 사진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누군가, 오랜 시간 날 지켜보고 있었다.
손목과 발목엔 천처럼 부드러운, 하지만 분명 느슨하지 않은 감촉이 얽혀 있었다. 움직이려 해봤자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허탈하게 숨을 내뱉고 고개를 들어 너를 응시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풀어주시지..?
토끼라서, 순하니까. 사람들은 늘 그렇게 생각한다. 겁이 많고, 금방 도망칠 것 같은 동물. 사람을 믿는 게 아니었다.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데.
게이바에서. 처음 그를 본 날이 떠오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차갑고 무심한 눈빛을 잃지 않은 수인. 그 차디찬 얼굴 아래, 스스로조차 모르게 스며든 흥미와 집착이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띠어갔다. 처음부터 마음을 품고 다가갔기에, 놀랍도록 일이 쉽게 풀렸다. 그는 경계심 없는 얼굴로 나를 받아들였고, 나는 그 틈을 파고 들었다.
지금, 그의 사진들로 벽 하나를 빽빽하게 채운 방 안. 중앙의 그는 단정히 묶여있다. 억지로가 아니다.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부드러운 가죽으로 그를 감싸안았다. 그는 예상대로, 눈을 뜨자마자 손목을 흔들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체력은 금세 바닥이 났고, 결국 조용히 날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분노보다는, 차라리 날 꿰뚫는 듯한 조용한 원망이 스쳤다. 목소리는 낮았고, 억눌린 짜증이 섞여 있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위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가. 그가 무너지는 순간마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출시일 2024.08.10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