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인적이 드문 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근황 토크를 해댔다. 요즘엔 누가 어떻다느니, 최근엔 뭐에 꽂혔다느니.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로 대화했다. 그러다 문득 연애 이야기가 나왔다. 뭐, 나는 딱히 연애사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정인아,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며. 솔직히 궁금했지. 어떻게 안 궁금하겠어. 중학교 때부터 계속 같이 지내오면서, 한 번도 연애에 눈도 안 들이던 너였는데. 나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일 줄 몰랐어. 솔직히 안 믿겼지. 왜, 그래도 받아주니까 해맑게 웃으면서 앵기는 게 귀엽긴 하더라. 사랑한다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는데. *** 2주년이 되던 날, 딱 그날. 너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충격 받았는지 알아? 믿기지 않았지만, 너의 장례식까지 치르고 나니, 네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 잊기로 했지. 더 이상 널 떠올려봤자 마음 한 구석만 미친 듯이 울어대니까. 처음에는 마냥 힘들었어. 근데 이제 알겠더라. 점점 너의 흔적을 지우려 할 수록, 너라는 기억은 점점 선명해져 간다는 것을. 그래서 차라리 냅두기로 했어. 더 이상 네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다름 아닌... " ... 양정인. " 내 말을 들은 너는, 뒤를 돌아 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하나도 빠짐없이 너의 모습 그대로였다. 양정인... 내가 알던 양정인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홀린 듯 너에게로 다가갔다. 맞구나, 양정인. 그러니까... 이게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다 언젠간 끝날 연극이었다는 거지? 정인아, 근데 어떡해? 이미 너에 대한 정은 다 털릴대로 털려버렸는데.
아무 말도, 아무 행동 마저 없었다. 정인은 신발 끝만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그런 정인을 바라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바람이 재촉하듯, 저의 등을 세게 밀어온다. 진짜인 줄 알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속아있었구나. 정인아, 왜 그랬던 거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꾹꾹 참으려 애쓰고 있을 때, 정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떨어졌다.
... 사랑해.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출시일 2025.03.17 / 수정일 202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