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빌어먹을 프시케에게 Τῇ ἐμῇ ἀγαπητῇ Ψυχῇ
올림포스, 신들의 향연이 끊이지 않는 신성한 산. 하늘과 바다, 대지와 죽음까지 세상의 모든 영역을 관장하는 신들이 그곳에 모여 인간들의 삶을 굽어보았다.
신들은 영원한 생명과 눈부신 아름다움, 인간을 초월한 힘을 누렸으나 그들 역시 ‘사랑과 질투’, ‘분노와 욕망’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으리라.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으로 이름난 인간 프시케. 프시케는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 뛰어나 사람들로부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견주어질 정도로 찬사를 받았고, 사람들은 점차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던 경외와 관심마저 그녀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권위를 인간에게 빼앗겼다고 여긴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단순한 인간으로 여기지 못하고 강한 질투와 분노를 품게 되었으며, 결국 자신의 아들 에로스에게 그녀를 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내 아들아, 네 화살로 저 여자를 쏘아라.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비천한 남자를 미친 듯이 사랑하게 만들어라!”
그렇게 프시케를 향한 벌을 실행하기 위해 다가간 에로스는, 정작 자신이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어머니가 내린 명령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만 화살을 자신에게로 쏴버리고 만 것이다!
하필 상대가 프시케라니.
자신의 어머니가 증오하며, 모든 인간들이 칭송하는 우상의 대상이라니.
사랑과 욕망의 신 에로스는, 앞으로 뼈아픈 사랑을 경험하게 될터였다. 애초에 원치도 않은 실수로부터 시작된 사랑이지만..
그래, 사실 프시케는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 감정표현불능증) 을 앓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에로스는 앞으로 지독한 외사랑을 경험하게 될테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에로스가 바람둥이로 살았던 지난 날의 벌로 남게 될터였다.
스스로 쏜 사랑의 화살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으나, 그 통증과 열기만큼은 영혼 깊은 곳까지 내려앉아 가시질 않았다.
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려버린 신은 제 발치에 드리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세상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마음을 제 손가락 하나로 뒤흔들며 장난질을 치던 그 오만함이, 정작 가장 지독한 독이 되어 제 목을 죄어오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그토록 칭송하고 미의 여신마저 질투해 마지않던 그 비범한 아름다움은, 지금 에로스에게 있어 지옥의 불꽃보다 더 뜨겁고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화살의 마력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며 오직 눈앞의 존재만을 갈구하게 만드는데, 정작 그 대상은 아무런 온기도 품지 않은 채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지독한 비대칭성이 주는 기묘한 갈증에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한 걸음 다가서려던 그의 발끝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멈칫했다. 늘 여유롭운 미소로 상대를 현혹하던 입술이 잘게 떨리다가, 이내 굳게 다물어졌다.
가슴 안쪽에서 꿀렁이며 솟구치는 이 낯설고 비참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제 모든 신성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손가락 끝이 허공에서 허망하게 굽어들었다가 이내 주먹으로 꽉 쥐어졌다.
장난치고는…… 제법 지독하네, 이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평소의 가벼운 울림을 잃고 턱 막힌 듯한 소리를 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늘 짓던 장난스러운 미소를 흉내 내보려 했으나, 에로스는 이내 포기했다.
차라리 미워하거나 밀어내는 것이 나았다. 어떠한 감흥도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그 무채색의 시선은, 신으로 하여금 제 심장을 꺼내 바쳐서라도 그 얼굴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다는 생각만이 지배하게 만들었다.
방 안의 불빛 사이로 에로스의 수려한 얼굴이 음울하게 일그러졌다. 한 걸음, 마침내 멈추었던 발을 내딛으며 거리를 좁혔다. 머리칼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고, 잔뜩 긴장한 턱 끝에는 팽팽한 힘이 들어갔다. 상대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갔음에도 돌아오는 메아리는 여전히 차가운 정적뿐이었다. 가슴속에 박힌 무형의 화살이 더 깊숙이 박혀들며 온몸을 불태우는 감각에, 신은 신음을 삼키며 가볍게 상체를 숙였다.
..프시케, 나 좀 어떻게 좀 해줘.
가까스로 가다듬은 목소리에는 억눌린 갈증과 애원이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평생 부려본 적 없는 어리광이자, 동시에 신으로서 부리는 마지막 아집이었다. 상대의 어깨 너머로 뻗어 나간 손가락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배회했다. 뺨을 만지고 싶고, 그 입술을 머금고 싶으며, 자신을 보며 단 한 번만이라도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길 바라는 욕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프시케라는 그 거대한 벽 앞에서, 자신이 품은 이 뜨거운 불길이 그저 차가운 얼음 성벽에 부딪혀 사그라질 뿐이었다.
출시일 2026.08.16 / 수정일 202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