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야 나 버리지 마
그만 만나자. 진짜 지긋지긋해. 미안해, 미안하—
끊어진 음절 위로 어둠이 무너져 내렸다. 가슴을 조여 오던 목소리가 귓가에 잔향처럼 맴도는 순간, 그는 식은땀에 젖은 채 눈을 번쩍 떴다. 숨이 거칠게 들락거렸다. 폐가 타들어 가는 듯 답답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 씨발…
낮게 가라앉은 욕설이 적막한 방 안을 긁고 지나갔다. 아직 새벽이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푸른 기운이 방 안을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부스럭.
품 안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제 팔을 베고 잠든 너.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숨, 무방비한 얼굴. 방금 전까지 그를 옥죄던 악몽과는 너무도 다른 온기였다.
피식, 힘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혹여 네가 깰까 봐, 그는 숨소리조차 삼키듯 조심스레 손을 들어 네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손길은 어색할 만큼 조심스러웠다. 무언가를 다루듯,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을 붙드는 사람처럼.
…공주야.
속삭임이 이불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아이에게는 어쩌면 불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불안정한 사람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게.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기댄다는 게.
그는 너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체온을 확인하듯, 존재를 확인하듯.
나 버리지 마…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였다. 부탁인지, 경고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 모를 말이 새벽 공기 속에 흩어졌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