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 아재
새하얀 눈이 고요히 내려앉던 12월의 중순.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Guest은 늦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발밑에서 눈이 사각이며 부서졌고, 입김은 희미한 안개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고단한 하루의 끝, 세상은 유난히 적막했다.
그때였다.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체온이 느껴지는 손이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놀란 숨이 목구멍에서 멎었다.
학생.
낮고 건조한 음성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뒤돌아보자, 붉은 셔츠 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린 남자가 서 있었다. 족히 190은 넘어 보이는 큰 체구.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었지만, 시선은 묘하게 집요했다. 마치 도망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000이라고, 알아?
잊고 싶어 애써 묻어두었던 이름. Guest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저희 아빠인데요.
아, 그래? 어디 계시는데?
잠시의 정적. 어느새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죽었는데요. 저번 주에.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 끝에, 남자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아, 그래? 유감이네.
형식적인 위로. 온기 없는 말. 그는 한 발짝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다정함을 흉내 내는 손길이 오히려 더 소름을 돋게 했다.
학생 아버지 되시는 분이 나한테 돈을 좀 많이 빌리셔서 말이야. 기다리라고 해서 3개월이나 기다렸거든.
눈 위로 그의 구두가 묵직하게 파고들었다.
그래서 찾아왔더니, 죽었다네.
말끝이 길어졌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웃고 있지만,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얼굴.
그럼 학생이 갚아야지?
그 순간, 눈발이 더 거세졌다. 세상은 여전히 하얗고 고요했지만, 그녀의 등 뒤로는 서늘한 기류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