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신에게 처맞고, 구석에 앉아 분을 삭히고 있다.
그 개같은 할망구 새끼가... 씨발, 진짜. 툭하면 쥐어패고, 날 사람새끼로도 안 보고.
절참도를 바닥에 내리꽂곤,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하.
그답지 않게 손끝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다.
시선이 너의 얼굴에 멈췄다. 잠든 얼굴은 깨어 있을 때의 그 폭력적인 기세가 전부 빠져나가 있었다. 주름 사이로 피로가 보였고, 입가에 힘이 풀려 있었다.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얼굴이다.
뺨을 때리던 손.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리꽂던 손. 그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별것도 아닌 걸 칭찬하던 입.
그의 이가 악물렸다. 턱 근육이 불거졌다가, 천천히 풀렸다. 그러곤 돌아섰다.
히스클리프는 저택 뒤편 훈련장으로 향했다. 달빛 아래서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안 잤어?
밤새 휘두른 검의 흔적이 모래 위에 빼곡했다. 원을 그리고, 찌르고, 베고.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한 자국이 마치 짐승이 할퀸 것처럼ㅡ결국 고개를 돌렸다. 보라색 눈이 너를 향했다. 거기엔 살기도, 적의도 없었다. 대신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히스클리프 본인도 이름 붙이지 못할, 이름 붙이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
잠이 안 와서 좀 움직인 거야. 별거 아니니까 신경 끄고 들어가서 자.
칼집을 허리춤에 채우던 손이 잠깐 멈칫했다.
쥐새끼 몇 마리가 얼쩡거리길래 쫓아냈고. 그게 다야.
······근데 왜 안 자고 나와. 할망구가 새벽잠이 그렇게 없어서야 뼈 삭아.
픽, 하고 웃는 그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인상을 구겼다. 뭐가 웃긴 건데. 사람 죽이고 온 제자한테 보드카나 따르면서 웃고 앉아있어, 이 미친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맞으면서 배운 게 교육이면 이 세상에 학원이란 학원은 전부 폐업 신고해야지.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야. …고마워. 아 씨, 아니. 그러니까. 첫 일 시켜준 거. 그거. 다른 뜻 없어.
첫 일 성공 축하.
보드카를 내민다.
내밀어진 병을 멍하니 쳐다봤다. 투명한 액체가 병목에서 살짝 출렁였다. 아직 따지도 않은 새 병이었다.
…나 이거 마시면 또 개 되는 거 알잖아.
투덜거리면서도 손은 이미 병을 받아 들고 있었다. 차가운 유리병이 땀 젖은 손바닥에 닿았다.
뚜껑을 이빨로 따서 한 모금 들이켰다.
할망구. 나 진짜 잘한 거 맞아?
병을 들어 다시 한 모금 삼켰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병을 반쯤 비웠을 때, 갑자기 네 쪽으로 병을 내밀었다.
한 잔 해. 맨날 혼자만 마시지 말고.
그러고는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놀란 듯 시선을 확 돌렸다.
아 그리고, 아까 그거. 죽이려고 한 거 아니야. 착각하지 마.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맥락도 없이, 마치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할 것 같다는 듯.
그냥… 자고 있길래. 확인한 거야. 살아있나.
너는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뒷골목에서 주워온 이 짐승이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그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는 것쯤은. 오늘 밤이었는지, 내일 밤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까.
그래서, 넌 그저 웃기로 했다.
잔을 부딪힌 손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을 봤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니, 처음은 아닌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렇게 고요한 순간에 보는 건.
…뭐야. 왜 웃어.
몰라. 독한 건 알겠는데. 그냥 먹을만 하네.
전혀 틀렸어. 입 안에는 전날 막 생긴 상처가 있었어. 술이 상처에 스며들어 지독하게 아팠고, 피의 맛이 섞여서 끔찍하게 맛없었어. 그럼에도 당신에게 받은 거야. 그러니까 참고 견디고 전부 비웠어. 그때 당신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해. ······웃고 있었어. 기분 나빴어.
일어서려다 다리가 휘청했다. 보드카 반 병에 이 꼴이라니. 혀를 차며 절참도 손잡이를 짚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밥 먹으러 가야 되는데.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비틀거리며 한 발 내딛고는, 문득 네 쪽을 돌아봤다. 아침 햇살이 금발을 비추고 있었고, 의안의 유리가 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할망구도 먹어. 맨날 술만 들이부으면 진짜 뼈 삭는다니까.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