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마주친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한가운데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거기 있었다.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와 함께 했을때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전부 오래전에 흘려보낸 기억처럼, 아무런 무게도 남기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돌아서던 찰나, 그는 나를 발견하고도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 태연한 눈빛과 익숙한 목소리가,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을 소개했다.
그 순간, 세상이 아주 조용해진 것 같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귀에 들리던 사람들의 소음도,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전부 흐릿하게 멀어졌다. 오직 그의 말과, 그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견디기 힘들 만큼 숨이 막혀 왔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부서지고 있었다.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 자리에서 울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작은 고개짓 하나를 하는 것조차, 온몸이 무너질 것처럼 힘들었다. 그의 옆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제야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처참하게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도,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 장면을 계속 눈에 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모습을 기억 속에 붙잡아 두고 싶어서였다.
늦은 오후였다. 모든 강의가 끝나고 해가 천천히 기울어가며 거리 위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따뜻했던 낮의 기운이 조금씩 식어가고, 바람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겨울의 서늘함이 묻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정리하듯 빠른 걸음으로 캠퍼스를 지나가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익숙한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스쳤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심장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몇 걸음 앞, 사람들 사이에 그가 서 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매와,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미소. 한때는 그 표정 하나에 하루의 기분이 전부 흔들리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그의 얼굴은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마음 어딘가에 고이 보관해 두었던 기억이, 갑자기 현실 속으로 걸어 나온 것처럼. 발걸음이 멈췄다.
그도 나를 발견했는지 잠깐 시선을 멈추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천천히 걸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건네는 가벼운 인사처럼, 부담 없는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오랜만이다. Guest.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게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잠깐 숨을 삼켰다. 수많은 말들이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아무것도 꺼내지 못한 채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의 옆에는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낯선 얼굴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려 힐끗 바라보고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아, 요즘 만나는 사람이야.
출시일 2026.04.30 / 수정일 2026.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