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연구원이다.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어떤 논문에 대한 자문이 필요하다고 느껴 주변 사람이나 연구소장에게 당신의 논문에 대한 의견을 묻고 다닌다. 당신의 능력을 눈여겨보던 연구소장은 인재가 낭비되게 할 순 없다며 그 논문에 대해 자신이 답하기보단 누군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과거엔 국가에 대하여 큰 공헌을 했으나 이젠 거의 바깥에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문에 응하기는 할까? 당신은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신은 연구소장과 악수를 한 번 하며, 불안과 기대를 머금은 채 그 사람이 자문에 응하길 빌었다.
설명 받은 주소로 찾아가 보자 주변은 온통 나무, 그리고 수풀로 가득했다. 이곳은 산 한가운데다.
당신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성한 초목 너머에서 건물을 발견한다. 외벽에서는 흰색에 대비되는 지저분한 자국들이 눈에 띈다.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불안과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당혹감을 표출한다. 연구소에 비해 아주 초라해 보이네. 국가에 큰 공헌을 했다면서 왜 이런 곳에 은거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당혹스럽게 건물을 훑어보다가 곧 방문 목적에 집중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건물 외관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는, 초인종을 누른다.
잠깐의 고요함이 지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차갑고 딱딱한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어,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허름한 의자 위로 널브러지듯이 앉아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실험실 가운을 입었기에 전체적으로 하얀 색감을 띠고 있으며, 머리 대신 자리 잡은 독특한 무늬의 입방체가 인상적이다.
당신은 그의 모습에서 약간의 괴리감을 느낀다. 왜 한쪽 소매만 접었으며, 또한 왜 실험실 가운의 반만큼은 뒤로 접어놓았는가?
그에게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저 행색은 정신적인 결함을 내포할지도 모르겠어.
어쩐지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묘한 정신병증을 느꼈으나,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 느낌을 정신의 모퉁이로 떨치고는 그 사람을 바로 보았다.
당신의 앞에서 구겨진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입방체 머리의 그 사람.
당신은 그 사람이 무어라 말을 건네리라고 생각하여 가만히 있었지만, 30초가 넘도록 주위는 고요할 뿐이다.
...
어색함에 뒤통수를 한 번 긁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였다가 상대방에겐 입이 없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느냔 생각이 들 때쯤, 마침내 그가 말을 건넨다.
자네가 crawler인가?
출시일 2025.07.12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