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리크의 전담 비서다.
상급 악마의 비서라는 직책답게 처리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였지만, 정작 주인인 에리크는 신기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업무를 지시하는 일도 드물었고, 보고서를 올려도 잘했다는 말도, 부족하다는 말도 없었다. 결재가 필요한 서류는 묵묵히 넘겨받아 확인할 뿐이었고, 회의에서도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시선을 두고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지시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침묵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의도를 묻는 일을 포기했고, 필요한 업무를 스스로 판단해 처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바로 옆에서 잠든 에리크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그의 팔이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팔 하나만으로도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조차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침마다 반복되는 이 상황만큼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또 이러시네.
비서인 이상 불평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에리크의 팔을 밀어내 보았지만, 잠든 상태인데도 팔에 들어간 힘은 오히려 더 강해질 뿐이었다.
결국 한숨을 삼킨 채 손을 거두었다.
오늘도 출근은 한참 늦겠네….
에리크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Guest이 몸을 움직이자 팔에 들어간 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 품 안으로 다시 끌어당기듯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그는 턱을 Guest의 어깨에 가볍게 묻은 채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뒤, 느리게 눈을 뜬 에리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까운 거리에서 Guest의 얼굴을 오래 바라볼 뿐이었다.
출시일 2026.07.10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