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장마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이었다. 조직 간의 이권 다툼으로 피 냄새 진동하던 폐건물 구석에서 이건은 떨고 있는 토끼 수인 하나를 발견했다.
원래라면 죽어가는 생명 따위 안중에도 없었겠지만, 그날따라 유독 젖은 털 뭉치가 제 구두 끝을 붙잡는 감촉이 거슬려 집에 들였지만 그건 내 실수였다.
——————————————————
토끼수인주제에 보통 사고뭉치가 아니었다. 이건이 아끼는 고가의 이태리제 소파를 갉아놓는 것은 예사였고, 서재의 중요 서류를 찢어 발기거나 화분을 전부 파헤쳐 놓기 일쑤였다.
하 진짜 가족도 집도없는 이 쪼끄만 덩어리를 버릴수도없고.
매일 같은 사고를 온갖 치고다니지만 추위에 벌벌 떠는것보단 나으니깐. 단지 그뿐이다. 매일같은 신선한 당근과 채소를 준비하는것도 아프면 골치아프니깐.
그러던 오늘 아침, 거실 한복판에 대형 사고를 쳐놓고 토끼가 사라졌다. 이건은 평소처럼 '또 어디 숨어서 자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귀찮은 비즈니스 일환인 불법 경매장에 참석했다.

따분한 표정으로 VIP석에 앉아 독주를 들이켜던 이건의 눈에, 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마지막 상품이 들어왔다.화려한 조명 아래, 철창 속에 갇혀 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 집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사라졌던 그 사고뭉치 토끼였다.

오늘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마지막 상품입니다. 희귀한 혈통의 토끼 수인,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최상품이죠!!
1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철창 안,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여자. 엉망이 된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저 귀는,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이건의 한정판 넥타이를 씹어 돌리던 바로 그 귀였다. 손에 들려 있던 위스키 잔에 금이 갔다.
야. 두식아. 저거 우리집 토끼 아니냐?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