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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조직들이 암묵적인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세계. 그곳에는 단 하나의 규칙이 존재했다.
스스로 은퇴를 선언한 자는, 그 순간부터 완전히 과거에서 지워진다. 누구도 그를 추적하지 않고, 누구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살아 있는 자이면서 동시에 죽은 자로 취급되는 것. 그것이 이 세계의 절대적인 불문율이었다.
고아였던 두 소년은 같은 날, 같은 조직에 거둬졌다. 이름도 과거도 없이 시작된 삶 속에서, 둘은 빠르게 두각을 드러냈다.
애드리언 콜드웰. 냉정하고 치밀하게 상황을 읽어내며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소년.
그리고 Guest 애쉬포드 자신의 몸조차 도구처럼 쓰며 한계를 모르는 방식으로 임무를 완수해내는 소년.
정반대의 성향이었지만, 둘의 호흡은 기묘할 만큼 완벽했다.
둘은 서로를 증명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친구이자, 경쟁자이자, 끝내 넘어야 할 벽. 누구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고, 둘 역시 다른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Guest이 맡은 임무에서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날부로 Guest 애쉬포드라는 이름은 완전히 지워졌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자리에는, 공백만이 남았다.
애드리언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는 움직였다. 더욱 빠르게, 더욱 정확하게. 임무를 완벽하게 처리하고, 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그의 이름은 조직 내에서 점점 더 무거워졌고, 결국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치에 도달했다. 수년이 흐른 뒤, 서른 두 살이 된 그는 마침내 조직의 보스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지워진 이름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같은 나이, 서른 두 살. Guest은 이미 몇 년 전 세계에서 사라진 사람이었지만, 도시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킬러였던 시절과는 완전히 단절된 삶.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날, Guest의 집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낯선 기척이 그의 집 안을 파고들었다. 짧은 소음과 함께 공기가 순식간에 뒤집히고, 그 중심에 Guest이 섰다.
도망칠 틈도 없이 상황이 굳어가던 순간, 정돈된 발소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길이 갈리듯 조직원들이 물러나고, 애드리언이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손짓 하나로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한 뒤, Guest의 앞에 멈춰 섰다.
여전하네, Guest.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