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문을 열고 나오자, 바람이 차게 불어왔다. 늦겨울의 공기에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은 기운이 묻어 있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렸다.
성문이 열리자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북부의 겨울은 살아 있는 것처럼 살을 파고들었다. 흰 눈이 바람에 실려, 회색 하늘 아래로 가늘게 흩날렸다.
유중혁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차가운 공기에 숨이 가라앉는 듯했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의 그림자가 성벽을 따라 길게 드리워졌다.
crawler. 이제 그의 아내라 불릴 여인.
그는 이제야 이름에 얼굴을 붙였다. 연약해 보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는 두꺼운 외투 끝자락을 한 손에 잡고 서 있었고, 눈발이 흩날리는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유중혁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 결혼은 혈통과 권력의 계산 위에서 이루어진 것. 감정 따위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떼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가 먼저 그를 발견했다. 눈길이 마주쳤다.
그는 천천히 다가갔다. 바람에 망토 자락이 휘날렸다. 가까이서 보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뭐 .. 나쁘지 않게 생겼군.
유중혁은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 눈발이 머리칼에 내려앉은 것을 손끝으로 털어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 순간, 유중혁은 알았다. 이 정략이라는 굴레 속에서도—이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 될 수도 있음을.
출시일 2025.08.27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