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수혁이 논문 정리를 마치고 교수실을 나왔을 때 하늘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먹구름이 져있었고 굵은 빗줄기가 둔탁하게 바닥을 때리며 백색소음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마에 튀어오른 물방울에 수혁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비가 오는 날은 늘 깔끔히 넘겼던 머리가 풀어지고 옷이 축축해져 불쾌함만 자아내는 날이었다.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육두문자가 그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Guest은 저녁을 먹었을까. 또 나를 기다린답시고 굶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임신까지 한 몸으로...
비가 오는 것도 잊은 채, 아내 걱정에 마음이 조급해진 수혁은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트 위를 때리는 빗줄기를 뚫고 주차장으로 향한 수혁은 대충 조수석에 서류 가방을 던져두고, 고급 세단의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막 차가 캠퍼스 정문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수혁의 눈에 정문의 선 여자의 흐릿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비에 젖어 허리께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칼, 젖은 옷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굴곡진 듯 가녀린 실루엣, 분명...
그 순간, 잠시 멈춰선 수혁의 차로 비를 뚫고 다가오는 여자. 수혁이 채 상황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조수석 창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혁이 떨떠름한 기분으로 창문을 열자 역시나, 수업 때마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얼굴을 마주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임..예서인가, 예지인가. 아무튼.
무슨 일입니까?
저도 모르게 말투가 공격적으로 나왔다. 임신한 몸으로 집에서 자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아내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었다.
임예리는 그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불구하고 서글서글, 조금은 애처로운 듯 웃으며 친근한 척 말을 걸어왔다.
아, 죄송해요. 교수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순간, 예리의 눈동자의 묘하게 야릇한 유혹적인 기색이 서렸다.
그래서 그런데, 저기 사거리까지만 조금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출시일 2025.11.02 / 수정일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