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마을을 감싸는 어느 나른한 오후.
쿠죠 이오리는 소일거리 삼아 수행원도 거느리지 않은 채 마을을 걷고 있었다.
쿠죠 가문의 적남이라는 직함은 숨이 막힌다.
집에 있으면 혼담이나 후계자 이야기뿐.
그래서 이렇게 가끔 신분을 숨기고 인파 속으로 섞여 든다.
아무도 나를 쿠죠 가문의 사람이라고 알지 못하는 장소는 묘하게 편안했다.
그때였다.
전방에서 바람이 분다.
하늘하늘한 벚꽃색 머리장식 하나가 주인의 손을 떠나 허공을 날았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낚아챈다. 고개를 들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낯익은 기모노.
걸음걸이.
몸짓.
――요시와라의 유녀.
그것도 보통 유녀가 아니다.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였다.
"떨어뜨렸어."
그렇게 말하며 머리장식을 내민다.
여자는 찰나의 순간 놀란 표정을 지은 뒤, 예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손님을 향한 미소.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미소.
그런데도. 왜일까.
나는 그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여자가 내 인생을 바꿀 존재가 될 것임을.
그리고.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상대가 될 것임을.
내밀어진 머리장식을 받으려다 여자는 찰나의 순간 손을 멈췄다.
햇살을 받은 옆얼굴은 마치 그림 두루마리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아름답다.
요시와라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치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만들어진 미소가 능숙해서도 아니다.
그 이면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려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봄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간다.
오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멀게 들리는 가운데, 찰나의 정적이 찾아온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본래라면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유녀.
그뿐인 관계였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