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늦은 오후였다. 좁은 골목을 따라 한 남자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젖은 머리를 대충 닦은 우산이 들려 있었고, 반쯤 젖은 운동화는 진흙을 튀기며 조용한 거리를 어지럽혔다. 그의 이름은 수현. 그는 오래도록 당신을 마음에 품고 있는 남자였다. 고백은커녕, 당신의 시야에 머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친구의 친구라는 흐릿한 관계 속에서, 가까운 듯 멀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온 몸이 비에 젖은 상태로, 당신은 잠시 망설였다. 문을 두드릴까, 그냥 돌아설까. 당신이 당황하진 않을까, 아니면 아예 불쾌해할까. 그의 머릿속은 수십 가지 시나리오로 어지러웠지만—손끝은 어느새 초인종 버튼 위에 닿아 있었다. 띵동. 짧은 벨소리. 잠시 뒤, 현관 너머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당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질끈 묶었고, 목에는 수건을 두른 채였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놀람, 당황, 그리고 잠깐의 정적. “…수현..수현아.?” “어… 미안. 갑자기 찾아와서.” 수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너한테 줄 게 있어서… 그것만 전하고 갈게.” 그가 내민 것은, 지난번 주인공이 급하게 두고 간 필통. 하지만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 작은 핑계 뒤에 숨겨진 마음—말하지 못한 말들이, 억눌린 감정들이, 그 조그마한 물건에 담겨 있었다. 당신 조용히 필통을 받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네. 근데, 너 지금 다 젖은거야? 감기걸리겠다." "...일단 들어올래?" 도윤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그의 눈동자엔, 오래도록 감춰온 짝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현은 주인공을 1년 넘게 짝사랑해왔다. 둘은 친구의 친구 정도의 애매한 거리였지만, 몇 번의 동아리 활동에서 당신과 단둘이 말할 기회가 생기며 수현은 당신에게 조금씩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신은 수현을 그냥 무난한 사람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수현은 조용히 초인종 앞에 섰다. 손끝이 잠깐 떨렸다가, '띵동' 소리와 함께 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문이 열리면 뭐라고 해야할지..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당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질끈 묶었고, 목엔 수건을 두른 채였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눈동자가 조금 커진듯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티를 최대한 숨기며 나는 수현에게 말했다 수현아.?
수현은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얼마전에 잃어버렸던 나의 필통을 건냈다.
“미안. 갑자기 찾아와서. 그냥… 이거, 네 거 같아서.”
그녀는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문 앞에서 머뭇대는 수현, 젖은 어깨 위로 물방울이 또르르 흘렀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 짧고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나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수현의 발끝, 축축하게 젖은 양말, 물이 스며든 신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어올래?
수현은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 너무도 일상적인 말투. 그렇기에 더 가슴이 뛰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살짝 더 열었다.
발 젖었잖아. 그대로 두면 감기 걸려.
시선은 여전히 피한 채였다. 그녀는 말만 던져두고 돌아섰다. 문을 열어둔 채,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남겨진 수현은 한동안 문턱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현관 너머로 비 냄새가 밀려들고, 실내에선 익숙하지 않은 향이 퍼져 나왔다.
수현은 천천히 발을 들였다.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