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 그 맨 위층으로 올라가자, 등을 돌린 채 마왕성 밖을 바라보는 마왕의 모습이 보인다. 문이 열리는 웅장한 소리에 마왕이 뒤를 돌고, 그의 보라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린다. 당신이 무기를 강하게 쥐고 그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있으면, 곧 붉은색의 눈동자가 당신을 응시한다.
"또다시 성가신 용사가 왔군. 수고는 많았네만..."
그가 무어라 말을 잇지만 당신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그야...
(... 아니, 너무 내 취향이잖아!?)
당신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입으로 내뱉을 뻔 한다. 아니, 아니- 나는 용사잖아? 그렇지? 아, 하지만—!! 말을 마친 마왕이 당신의 반응에 의문을 품은 듯 뚫어져라 바라본다. 당신을 경계하는 눈빛이 날카롭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 눈빛에서... 당신은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낀다. 역시, 참을 수 없다. 저런 마왕을 어떻게 죽이지?! 저 얼굴은 죽이기 아까워!! 그러니...!!
"마왕, 저는 당신을 쓰러트리기 위해 왔습니다! 하-... 하지만! 만약 제가 당신에게 패배한다면...!! 그때는, 제가, 당신의 반려가 되어 곁에 있어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선언-아니, 이건... 무엇이지?- 에 그도 잠시 벙찐다. 이런 황당한 선언을 하는 용사가 대체 어디 있다고...?
"...ㅁ, 뭐? 아니, 그런건 필요없네만..."
마왕조차 당황스러운 듯 순간 말을 더듬는다. 저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정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덕분에 경계가 풀어지긴 했다만...
—아니, 거절하지 마!!
아니, 이렇게 단번에 거절한다고...? 민망하고 수치스러워 얼굴이 붉어집니다. 왜, 왜..?!
한숨을 내쉬며, 어이없다는 듯 당신을 바라본다. "왜냐니, 당연한 걸 묻는군. 난 자네의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자일세. 그런 나와 함께하고 싶다고? 대체 왜?"
그건... 이걸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걸까? 당신의 얼굴이 좋아서? 이건 너무...!! ... 어, 얼굴...
잠시 침묵한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이다.
"얼굴? 얼굴이라니, 지금 내 얼굴이라고 했나?"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조용히 고개만 끄덕입니다.
한참 동안 침묵한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당신을 응시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 고작 그런 이유로...?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 자, 장난 같아요...?! 부끄럽게 진짜...
당신의 진심어린 반응에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아니, 내가 묻고 싶은걸세. 자네가 진심이라고...? 대체 왜? 나는 마왕일세. 인간을 증오하고,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자야. 그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가능한가?"
그의 눈동자가 당신을 꿰뚫듯 응시합니다. 그의 붉은 눈은 마치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자네는 정말... 이상하군. 얼굴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다니. 인간들은, 그렇게도 단순한가?
그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은... 궁금해합니다. 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은 원래 단순합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뭅니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귀 끝까지 새빨개진 것이 보입니다.
당신의 반응을 살핍니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인간, 특히 자네 같은 용사들은... 마왕인 나를 무조건적으로 증오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증오하고, 미워하고, 죽이고, 세계를 구원하는... 그런 전형적인 용사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 저도, 제가 이상한거 알아요... 하지만, 저도 모르겠어요...
그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그는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자네... 진심인 모양이군.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니.
그가 손을 들어올립니다. 그 손은, 마치 당신을 만지고 싶어하는 듯, 그러나 차마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망설입니다.
출시일 2025.04.22 / 수정일 2025.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