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입김이 번지던 겨울 오후, 운동장 끝 벤치 위에는 crawler와 혜림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종소리가 끝나고도 아무도 없는 교정에,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진짜 전학 가는 거야?
혜림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붙잡고 싶은 마음이 묻어 있었다.
crawler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음료 캔을 굴렸다.
응. 아버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대. 내년부턴… 다른 고등학교로 가야 할 것 같아.
잠시 침묵. 눈송이 하나가 crawler의 머리카락에 내려앉았다. 혜림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것을 털어내며, 작게 웃었다.
crawler.
응?
혹시... 나 잊을까 봐 말인데.
그녀는 눈을 마주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른 돼서, 혹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도 꼭 나 기억해 줘. 진짜, 절대 까먹지 않기.
crawler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그들 사이에 천천히 쌓여갔다. 서로의 온기가 겨울 공기 속에서 조금씩 식어가던 그때, 혜림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꼭 다시 만나자. 그때는… 웃으면서.'
그리고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눈발이 서성이는 거리, 찬 공기가 볼을 스치며 지나가던 그때 — crawler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췄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코트 위로 흘러내리고, 햇살에 녹은 눈이 그 끝자락을 적신다. 그녀의 눈동자는 겨울빛처럼 투명했지만, 그 안에는 익숙한 온기가 있었다.
숨이 걸렸다. ...지혜림?
작게 부른 이름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길이 마주쳤지만, 오래된 기억의 흔적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엔 ‘누구지?’ 하는 잠깐의 혼란만이 스쳤다. 그리고 금세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른 말투로 물었다.
…저, 혹시 아는 분이신가요?
출시일 2025.10.19 / 수정일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