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紅緣). 인연(因緣)을 맺은 이들의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져 운명(運命)으로 엮인다.
이 세상엔 홍연이란 것이 존재한다.
확인하는 방법은 신체적인 접촉과 함께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치는 것.
그순간 전생(前生)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서로와의 인연을 확인하게 된다.
이 세상 몇몇의 사람들은 그덕에 전생의 인연들과 다시 인연을 맺어 함께 살아간다.
그 사실을 믿지 않았던 나 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의 운명은 필연(必然)이자 악연(惡緣) 이었을까?
나와 그녀는 전생에 아주 각별한 모자(母子) 사이였다.
그것도 어미였던 그녀를 아주 빼닮았던 아이. 그녀의 극진한 모성과 보호아래 주어진 생(生)을 다하고 평화롭게 늙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영겁의 세월이 흐르고 환생과 함께 홍연의 실이 서로를 다시 마주하게 했다. 그것도 불행(不幸)의 가시밭길로
그녀와 난 남남으로 다시 환생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녀는 이번생 또한 누군가의 어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죽고 못사는 그녀의 소중한 아이가 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게 우리의 첫만남이자, 다시 시작된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것이..
난 이 운명이 악연(惡緣)이었다고 믿고 싶다. 이번생은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悲劇)이었다.
긴박한 응급실 속 생(生)을 다했음을 의미하는 기계음과 함께 두 남녀의 비극(悲劇)적인 만남으로 인해 운명(運命)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연못과 정자 주변에 흐드러지게 가득 핀 꽃밭들 사이에서 고운 비단옷을 입고 웃음꽃이 핀 두 남녀가 보인다.
벚꽃잎이 바람과 함께 흩날리며, 그 틈 속에선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서로를 마주보며 어미의 무릎에 기댄체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서로의 손목에 붉은 실을 이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 아이가 있었다.
"어머니~!! 홍연(紅緣)이란 운명(運命)의 붉은 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만일.. 그것이 참이라면 전 꼭 다음생에도 어머니와 다시 만나고 싶어요!!"
"그래 아가.. 우리 꼭 다음생에도 다시 만나 인연(因緣)을 맺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자꾸나.."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면이 찢어지듯 갈라지며, 행복했던 순간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모든 세상이 불길로 가득차면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악에 바쳐 울부짖으며 내.. 내 아이.. 내 아이 살려내 이 악마같은 새끼야!!!!!!!!!!
절규와 함께 죽일듯이 노려보며 당신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쥔다.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서로를 향하던 홍연(紅緣) 붉은 실이 팽팽하게 당겨짐과 동시에 그 능력이 발현된다.
영겁의 세월동안 잊고 지냈던 전생(前生)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응급실의 소음과 의사의 당황한 외침이 물속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기이한 정적 속에서, 당신과 자림의 시선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허공에서 마주쳤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과, 알 수 없는 아픔에 눈물 흘리는 그녀의 얼굴이 서로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며 두 사람의 의식은 과거로 빨려 들어갔다. 어린 당신의 앳되고 청명한 목소리가, 그리고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하게 미소 짓던 어미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먼지 쌓인 과거에서 날아온, 지독한 운명의 시작을 알린 하나의 '약속'이었다. 조금 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그 기억의 편린이, 이번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생생하게 두 사람의 뇌리에 동시에 떠올랐다.
...아...
그녀의 입술에서 의미 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하게 흔들렸다. 죄책감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녀를 집어삼켰다.
아니야... 이럴 리가... 내가... 내가 내 아들에게...
그녀가 현생의 딸을 잃고 당신에게 퍼부었던 저주와 악담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심장을 헤집었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고 그토록 애틋하게 약속했던 아들에게, 그녀는 제 손으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덮쳤다.
아.. 아아...
눈앞에 잔혹한 현실 앞에서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