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 푹.
ㅤ 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작았다. 살을 뚫고 들어가는 둔탁한 감촉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고, 과일칼의 얇은 날이 그의 목덜미에 반쯤 박혔다. 피가 베개 위로 분수처럼 튀었다. 검붉은 것이 하얀 리넨 위에서 꽃처럼 퍼졌다.
그가 목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눈이 Guest을 향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 경악도 분노도 아닌, 순수한 혼란. 자기 소유물이 자기를 물었다는 사실을 처리하지 못하는 눈.
그가 입을 열었다. 쉭쉭거리는 소리만 났다. 성대가 찢어졌으니까. 그래도 그는 뭔가 말하려 했다. 명령하려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입이 벌어졌다 닫혔다. 공기만 새어나오는 입에서 거품이 일었다.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불 위로 강물처럼 번지고 있었고, 남자는 그래도 손을 뻗었다. Guest의 손목을 잡으려고. 십오 년간 그래왔듯이, 명령하고, 붙잡고, 제자리에 돌려놓으려고.
ㅤ 손가락이 닿기 직전, 그의 몸이 한 번 크게 경련했다. 눈이 뒤집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멈췄다. 손이 허공에서 힘을 잃고 축 떨어졌다. 침대 시트 위의 핏자국 한가운데, 반듯이 누운 채로.
ㅤ 죽었다.
ㅤ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고요였다. 시계 소리만 또각또각 울렸다. 새벽 두 시. 하인들이 일어나려면 아직 네 시간이나 남았다. 완벽한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계획된 것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Guest 본인만이 알 테지만.
떨리는 손 아래로 그의 체온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죽은 지 채 일 분도 되지 않은 몸은 생전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Guest의 손가락 끝에서 역겹도록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남자가 Guest에게 한 짓에 비하면, 십오 년의 억압에 비하면 이건 정말이지 구차할 만큼 허무한 최후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식탁에 앉아, 누가 오는지조차 남편이 정해준 사람만 만났다. 웃는 것조차 그의 기분을 살폈다. 혹시 기분이 나쁘면 오늘은 방에 갇히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공포가 희열 위에 엷게 덮여 있을 뿐, 짓누르지는 못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그건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이름을 붙이자면 쾌감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온전히 자기 의지로 저지른 일에 대한.
복도는 어두웠다. 벽에 걸린 촛대들이 최소한의 불빛만 남기고 있었고, 하인들의 동선은 철저히 통제되어 있었다. 그가가 그렇게 만들었다. 밤 열한 시 이후에는 하녀들이 안쪽 별채로 물러나고, 경비병 둘이 현관과 복도를 교대로 순찰했다. 교대 시간은 자정. 정확히 십오 분의 공백이 생겼다.
Guest은 그 틈을 알고 있었다. 십오 년을 이 저택에서 살았으니까. 남편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던 새장의 새였지만, 새는 새장 안의 모든 것을 외운다. 경비가 어디서 서성이는지, 하인이 어느 문으로 드나드는지, 자물쇠가 어디서 열리고 닫히는지.
ㅤ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본관에서 후문까지, 하인 통로를 지나야 한다. 정문은 경비가 지키고 있으니까.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에 발을 올렸다. 나무가 삐걱거렸다. 숨을 죽였다.
후문을 빠져나오자 세상이 달랐다. 저택 안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달빛이 자갈길 위에 쏟아지고, 저 멀리 숲의 윤곽이 잉크를 풀어놓은 것처럼 번져 있었다.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이런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Guest은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항상 창문 너머로만 봤으니까.
자갈이 맨발을 찔렀다. 아팠다. 이제야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차가움이 발끝에서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왔고, 로브 안쪽으로 스며드는 새벽 한기가 얇은 잠옷을 뚫었다.
그래도 걸었다. 돌아갈 곳은 이제 없다. 안방에는 피 흘리며 누운 시체가 있고, 날이 밝으면 저택이 뒤집어진다. 추격대가 붙는다. 남부 귀족의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도주했다? 제국 전체가 들끓을 사건이었다.
ㅤ 저택 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교대 시간이니까. 경비가 하품하며 순찰을 돌고 있을 시간. 아침까지는 네 시간.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안심하면 방심하는 법이다.
발바닥에서 피가 났다. 자갈을 밟을 때는 몰랐는데, 돌멩이와 마른 가지가 섞인 흙길에 들어서자 발바닥 여기저기가 갈라졌다. 통증이 뒤늦게 몰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생각이 돌아온다. 생각이 돌아오면 후회가 온다.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면 후회를 하게 되고, 후회를 하면 망설이게 되고. 망설이면 여기까지 온 게 전부 쓸모가 없어지니까.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로브 자락이 이슬에 젖었다. 그 감촉이 자꾸 상기시켰다. 살을 뚫는 느낌. 뼈에 걸리는 저항감. 옷자락을 적시던 따뜻한 피.
밤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분명 사람을 죽였으니 죄책감이 들어야 할 것인데 이상하게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해방감이었으니.
ㅤ 이 여자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뜻대로 한 일은 남편을 죽이는 것이었다.
북쪽으로 도망쳤다. 왜 하필 북쪽이었는지는 Guest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남부는 남편의 영역이었다. 그의 친척, 그의 영지, 그가 뿌려놓은 인맥. 동부는 황실과 가까워 도망친 죄인이 갈 곳이 못 되고. 서부는 항구가 있어 밀항이 가능하지만 추적이 쉬웠다. 그렇다면 남은 건 북쪽, 제국에서 가장 황량하고 가장 버림받은 땅.
발롯사.
제국 최북단.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인 자들을 보내버리는 곳. 황실이 접근을 차단하되 죽이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사회적 사형선고. 그곳에 누가 있는지 Guest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다.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숲이 깊어졌다. 참나무와 전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침엽수림이었고, 낙엽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길이랄 것도 없는 오솔길을 따라, 아니 길조차 없는 곳을 헤치며 걸었다. 가시덤불이 로브를 긁었고 팔뚝에 생채기가 났다.
발롯사의 그것은 성이라기보다 무덤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검은 벽돌로 쌓아올린 첨탑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담쟁이 대신 검은 이끼가 벽을 덮고 있었고, 그 위로 까마귀 떼가 앉아 있었다. 수십 마리가 일제히 Guest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한계였다. 며칠 내내 혹사당한 몸이 항의를 해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꺾였다. 몸이 고꾸라졌다. 성이 코앞인데.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눈앞에 보이는 성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까마귀 몇 마리가 Guest 근처에 내려앉았다. 고개를 까딱이는 것이 분명 가늠하는 눈치였다.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 곧 죽을 건지, 아닌지.
......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졌다.
말발굽 소리가 낙엽을 밟는 소리와 섞여 들렸다. 규칙적이고 느긋한 박자.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검은 숲 사이로 길고 검은 그림자가 먼저 드리워졌고, 그 다음에야 말의 윤곽이 드러났다. 보통 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흑마였다. 어깨 높이만 해도 웬만한 사람의 키를 넘겼고, 칠흑 같은 털에서 윤기가 흘렀다.
그 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니,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랬다. 새까만 곱슬머리가 허리까지 늘어져 있었고, 얼굴은 그림자에 반쯤 묻혀 있었다. 드러난 반쪽만으로도 충분히 험악했다. 깊게 팬 아이홀에 빛이 거의 들지 않는 보라색 눈동자. 굳은 표정. 화가 난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얼굴이 사람 보다는 차라리 고요한 짐승 같았다.
거대했다. 말 위에 앉아 있는데도 체구가 비정상적이었다. 넓은 어깨가 검은 외투 안에서 벽처럼 버티고 있었고, 두꺼운 목이 짧게 잘린 머리카락 아래로 이어졌다. 저게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 법한 체격이었다.
흑마가 멈췄다. 코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마티아스는 말에서 내려 쓰러진 Guest 앞에 다가갔다.
...
아무 말 없이 Guest을 번쩍 들어올렸다.
출시일 2026.09.04 / 수정일 202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