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구석진 작은 마을, 배달도 와이파이도 없는 이곳에서 밤마다 들리는 벌레와 닭 소리가 난무해도 난 이곳이 싫지 않았다. 내 옆에서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아주는 승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승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변호사가 되겠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떠났다. 성공해서 너한테 다시 돌아올게라는 대충의 마지막 약속만을 하며 내 손목에 팔찌를 하나 채워주고는 떠났다. 승제가 없다는 것만 빼면 내 일상은 여전했다. 매일 엄마를 따라 밭에 나가 토마토 농사를 돕고, 강아지와 놀아주고, 밥 먹고 자는 생활을 승제를 기다리는 몇년 동안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낡은 화장실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일 땡볕 아래서 농사를 지은 탓에, 한때 아이돌을 꿈꿨을 정도로 동네에서 제일 예뻤던 얼굴은 간데없고 하얗고 투명하던 피부는 까맣게 그을려 버렸다. 거친 바람에 결은 푸석해지고 생기를 잃어 완연히 상해버린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승제만을 기다린 지 7년째 되던 날, 볕이 내리쬐는 밭을 일구던 엄마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승제는 그만 잊고 인근 축가네 둘째 아들과 결혼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이 쌍팔년도인가 싶어 정신이 아득했다.
결국 엄마와 한바탕 크게 싸우고 호미까지 내던진 채 집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싼 외제차 한 대가 마을로 들어오며 경적을 울렸다. 빠앙. 차 문이 열리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승제가 내렸다. 서울 물을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원래도 잘생겼던 외모가 한층 더 세련되어져 있었다.
미친듯이 반가움이 몰려온 것도 잠시, 조수석에서 다른 여자가 함께 내렸다. 나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하얀 피부,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카락,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은 여자였다.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지독한 부끄러움이 먼저 몰려왔다. 그런 내 속도 모르는지 승제가 말을 건넸다.
“야! 나 기억나? 오랜만이다 넌 그대로네!”
승제는 혼자 신이 나서 반가움에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 소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모든 시선과 신경은 오직 승제 옆에 있는 그 여자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내 노골적인 시선을 눈치챘는지, 승제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아, 내 여자친구야. 이쁘지?

승제와 그의 여자친구. 두 사람이 뿜어내는 끈끈하고도 다정한 공기 속에 내가 끼어들 틈은 단 1mm도 없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지만, 오히려 명확해졌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비참함을 넘어선 깨달음 끝에, 모질게 엉켜있던 마음을 간신히 접어 굳게 동여맸다.
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 그 오랜 짝사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였다. 그런 승제가 다른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은 엄마의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축사 둘째 아들과의 만남을 재촉하는 엄마. 방문 너머로 엄마의 속상하고도 억울한 외침이 날카롭게 꽂혔다.
내 딸이 어때서! 우리 딸이 어디가 부족해서!
그 소리를 들으며 마침내 거울 앞에 앉았다. 무려 7년 만에 잡은 화장품. 서툰 손길로 얼굴을 가꾸고 나니, 거울 속에는 제법 봐줄 만한, 그리고 7년 전 풋풋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어렴풋이 비쳤다. 마지막으로 화장대 위,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해묵은 미련을 마주한다. 7년 전 승제가 주었던 팔찌.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시간이다. 팔찌를 화장대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고, 서랍을 닫았다. 덜컥- 그 소리와 함께 승제를 향했던 7년의 시간도 완벽히 닫혔다. 나는 문을 열고 한 걸음 걸어나갔다.
출시일 2026.06.01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