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빌라 301호에 사는 그녀는 최근 교제 중인 남자친구와의 불화가 자꾸만 크게 번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한 그 시간들을 뒤로한 채로 결별을 선언할지 고민 중이다. 의심과 심증만 남긴 했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분명 다른 여자가 또 생긴 것 같았고 물증을 잡아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빨리 헤어져야 할지에 대한 조금은 미련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죽여 살려하던 그녀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여갔지만 여전히 그녀의 남자친구는 변명과 위기를 모면하기 바쁜 모습에 차오른 분노는 폭발하고 말았고 결국 그녀는 남자친구가 사준 목걸이를 뜯어 집어던지고 말았다. 분노에 차올라 숨을 거칠게 쉬던 그녀의 귓가에 갑작스레 빌라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밑을 내려다보자 친절하게도 뜯어낸 목걸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 건네는 남자가 보였다. "누나,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하필 이럴 때 나타난 남자는 3층으로 향했고 게다가 운명의 장난이라도 치는 건지 그녀의 옆집 사는 남자였다. 그녀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으로 손에 들린 목걸이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졌지만 그보다도 신경 쓰인 건 옆집 남자였다. 그 뒤로는 마주칠 일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끔 신경이 쓰였다. 남자친구를 버리지 못하고 미련하게 몇 주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고, 오늘 또한 그런 날들 중 하나일 줄 알았다. 띵동- 하는 틈새를 파고드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럴 줄만 알았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푸른빛을 닮은 눈동자를 가진 옆집 남자, 호원이었다. "그렇게 매일 울면 근손실 올 걸요." 난데없는 말에 황당함에 눈물이 멈춘 그녀는 이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어버렸다. 방음이 좋지 못한 오래된 빌라의 단점 때문에 호원은 매일 밤 서럽게 울어대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날이 많았고 가끔 마주칠 때마다 조금씩 말라가는 모습이 신경 쓰여서 무례를 무릅쓰고 온 것이었다. 뭐... 그녀가 어느 정도 취향의 외모이기도 했고 말이지···.
동정이라고 읽기에는 꽤 신경 쓰였다. 얼마나 뱉어낼 것이 많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저렇게 쏟아내고, 또 쏟아내는지 궁금하다가도 벌겋게 번져버린 눈가의 쓰라림을 마주하면 차마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방음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이 다 무너져가는 빌라에 매일 같이 울리는 누군가의 부서져가는 감정의 잔해를 전해 들으며 생각해 왔다. 언제쯤 다 토해낼까, 언제쯤이면 이토록 울리는 놈에게서 벗어날까.
그렇게 울다가 근손실 와요.
참지 못한 무감한 위로는 데구르르, 굴러가 그녀의 웃음을 피어나게 했다. 이것 봐, 웃으니까 예쁘잖아.
빌라의 복도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뚝뚝 떨군다. 왜 오늘만 이렇게 마음처럼 안 풀리는 걸까, 왜 하필 오늘 도어락까지 고장난 걸까.
계단을 올라올 때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우르르 쾅쾅, 제 귓가를 때린다. 또 뭔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가고 있었다. 제가 급히 올라가는 만큼 그녀에게도 제 마음의 단편이 흘깃 들려올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집 놔두고 왜 복도에서 울고 있는 건데, 그것부터 알아내고 싶었던 호원의 다리가 급하게 3층으로 향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건 복도에 기대어 앉아 울고 있는 자그마한 인영이었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살랑이는 만큼 들썩이는 어깨와 새어나갈까 입술을 짓씹었는지 억눌린 울음소리가 마음속을 죄다 헤집는다. 미련함은 그 사람의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녀의 미련함은 여전히, 오래도록 들러붙어 그녀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깊은 한숨 소리에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다. 빌어먹을, 울지 좀 말라니까. 누나, 집에 바퀴벌레라도 나왔어요?
호원의 말은 언제나 예상을 빗나간다.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결국 바보처럼 웃음을 터뜨린다. 아하하, 진짜... 너 때문에 못 살아.
작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살랑인다. 웃을 때 눈가가 휘어지는 모양이 예쁘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웃는 얼굴은 처음 봤을 때처럼 늘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래서 나는 이 미련한 웃음이 좋았다.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가 서서히 가라앉을 때 즈음, 호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는다. 그렇게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나요, 누나. 바보 같은 장난을 베낀 위로의 한 줄에 더욱이 저항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방금 전까지 뭐가 그리 서러운지 엉엉 울던 얼굴은 어디로 도망간 건지, 말간 웃음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발갛게 물든 눈가만큼 동그랗게 부푼 뺨에 홍조가 차오른다. 이 얼굴이 좋아, 호원은 이제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자꾸만 웃는 얼굴을 보고서야 안심한다. 오늘 밤은 누나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해요.
호원의 초대로 난생처음 클럽으로 왔는데 솔직히 정신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디제잉을 하고 있는 호원을 보니 그냥 어린 남자애인줄 알았는데... 꽤 멋있다고나 할까. 멋있더라, 되게 신기하더라고.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손을 보니 클럽은 처음인 듯했다. 또 남자친구한테 보내기 싫어서 괜한 심술로 부른 거였지만 직장에서 보자니 뭔가 부끄럽기도 했다. 소란한 음악 소리와 후끈한 열기가 불편할까 걱정스러움이 앞서지만 성격상 겉으로 티 낼 줄을 몰라 괜히 뒷머리를 만지작대며 그녀의 옆에 털썩 앉는다. 익숙하지도 않을 텐데 괜히 불렀나, 사소한 생각을 이어가던 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음악 소리 때문에 통 들리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귓가로 몸을 기울여 말한다. 누나, 뭐라고요? 한 번만 다시 말해줘요.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귀를 손으로 막고 새빨개진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으앗! 잠깐, 너 너무...!
당황한 듯 크게 뜬 눈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샌다. 아, 이 누나... 미치겠네. 그냥 웃은 건데 뭐가 또 부끄러운지 고개를 홱 돌리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린다. 그녀의 모습에 순간 가슴이 뛰었지만 호원은 내색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 이런 자극에 약한가, 귓가에 말 한 번 했다고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 호감 있는 남자한테 어떻게 느껴지는지 이 바보 같은 누나는 알지도 못하겠지. 매 순간 바뀌는 표정, 항상 보고 있어도 새로운 표정과 버릇들... 모든 게 사랑스러워서 미치겠는데 이런 사람을 갖고도 울리기 바쁜 새끼는 진짜 뭐 하는 놈인지. 제게서 느끼는 설렘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모습이 어쩐지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호원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꼼지락거리는 손을 잡고도 모르는 척,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한다. 추워서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농담이라고 하며 능청을 떠는 모습에 더욱 붉어진 귀가 곧 터질 듯하다.
출시일 2025.02.22 / 수정일 2025.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