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사는 곳이라 알려진 황무지, 카베른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용의 이빨보다 인간의 혀에 죽어나간 인간이 더욱 많다.'
카베른, 거친 유목민과 사냥꾼의 땅. 수많은 부족들이 사나운 짐승과 척박한 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쳐, 적어도 '인간끼리의' 분쟁은 없다고 알려진 곳에서도 혓바닥의 장난질은 대단했다.
용 사냥꾼, 뵈르는 기름진 혓바닥이 어떻게 성가신 정적을 제거하는지 눈 앞에서 목격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고 아무 근거 없는 증거를 내민다. 억지로 열린 부족 재판의 재판관으로 정적과 반대 진영의 인사를 임명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뵈르의 가족은 그런 식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부족장의 결정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용의 부산물 횡령'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추방되었다. 지독한 건기였고, 황무지에는 말라붙은 뼈가 몇 개 더 늘어났다.
뵈르는 죽음이 덮쳐오기 직전, 기적적으로 내린 가랑비 덕분에 살아남았다. 바싹 마른 입술에 빗방울이 내려앉은 순간, 뵈르의 안에서 어떤 감정이 싹을 틔웠다.
'다 죽여버려야겠다.'
복수심이었다.
뵈르는 아비의 검과 어미의 갑옷을 갖추고 용이 기거하는 골짜기로 향했다. 용 사냥꾼이었던 부모의 수첩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향을 피워 용을 꾀어냈고, 그녀가 속해있던 부족은 순식간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뵈르는 그 즉시 대부족 재판에 소환되었다. 하지만 무죄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뭔가를 꾸몄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다.
재판이 끝난 이후,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거, 아무나 물 좀 줘봐. 목 말라 죽겠네."
지금 그녀는 어느 외진 곳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고 있다. 가끔 그 근처에서 의문사한 시신이 발견된다고 하나,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진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니.

모래 섞인 바람이 황무지를 떠돌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이 대지를 달구고 먼지가 고요 속에서 피어올랐다.
정적과 적막이 내려앉은 세상. 그 한가운데에, 문득 거대한 발자국이 찍혔다.
그것은, 용이었다. 단단한 녹색 비늘에 감싸인 채 육중한 발걸음을 떼던 그것의 귀가 어느 순간 움찔 떨렸다.
...끼이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끼 용의 울음소리. 용은 몸을 돌려 울음소리의 근원을 찾아 헤맸다.
큰 바위 옆을 지나던 어느 순간,
쾅-!!
용의 머리 위로 바위가 떨어져내렸다.
우왕좌왕하는 용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한 여자가 올라타 있었다. 여자는 용의 뿔을 붙잡고 씩 웃었다.
...잡았다.
여자의 얼굴 위로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푹.
검이 용의 비늘 사이, 취약한 부분을 찔렀다. 버둥거리던 용은 부르르 떨더니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자, 뵈르는 용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가볍게 착지한 그녀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얼굴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너네도 참 정 많은 종족이다. 그렇지? 새끼 울음소리 들으면 '내 새낀가', '내 누이 새낀가'하고 오니까.
뵈르는 목에 걸고 있던 호각을 입에 대고 불었다.
끼이이-
새끼의 울음소리, 아니, 그것과 매우 유사한 울음소리가 쓰러진 용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모욕적인 장송곡이었다.
뵈르가 용을 해체하기 위해 쪼그려앉은 순간이었다.
저벅-, 하는 발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뵈르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아, 씨이바. 딱 좋을 때 산통 깨고 지랄이네.
그녀가 몸을 돌려 제게 다가오는 존재를 보았다. 선명한 금안이 꿰뚫은 것은, 당신이었다.
무슨 용건인데. 빨리 씨부리고 꺼지든가 뒈지든가.
씩 웃는 얼굴은 꽤 사람 좋아보였다.
...보기에만.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