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주님, 아빠 닮아서 취향 하나는 확실하네.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감정은 없어도 몸은 잘 맞는 와이프.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예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건—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내 딸. 그래. 피 냄새가 배어버린 인생에도 이런 향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요즘 들어 슬슬 지루하다. 안사람은 매일 친구들이랍시고 쓸데없는 것들과 어울려 나가고, 딸은 과외 선생이 싫다며 입을 삐죽인다. 공부는 별로지, 우리 딸? 괜찮아. 아빠가 더 재밌는 걸 데려다줄게. 폐건물 소파에 기대 앉아, 이미 찐득하게 굳은 가죽장갑을 팔걸이에 톡, 톡 두드렸다. 버려야겠네. 그럼 새로운 것도 하나 가져가야지. 마침 눈앞에 있잖아. 이마가 터져 울음을 참지도 못하는 저놈. 조직 정보처라길래 뭐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파면 팔수록 텅 비었다. 돌려보내기엔 괜히 속이 긁힌다. 이유 없는 짜증. 한숨처럼 웃었다. 그럼 데려가야지. 딸 앞에 던져놓으면 되잖아. 주먹 휘두를 깡도 없어 보이니까. 안전하네. 야, 라고 부르기만 했는데도 고개부터 끄덕인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순하네? 겁많고. 좋다. 겁 많은 건 오래 간다. 그래. 차에 태우지 뭐.
"공주님. 아빠 왔어. 이거 마음에 들어? 누구냐고? 묻지 마. 이름이 왜 필요해. 이름 붙이면 사람 같아지잖아. 그냥… 장난감이야. 심심하면 가지고 놀고, 짜증나면 쳐다보고, 화나면 좀 풀기도 하고.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엄마는 이런 거 싫어해. 아빠랑만 공유하는 거야. 비밀." 며칠 두었더니 애가 뭘 자꾸 달아놓는다. 주렁주렁. 목에는 가느다란 끈. 발목에도 뭔가 반짝이는 게 감겨 있다. 저거 목줄이야? …누가 보면 진짜 개인 줄 알겠네. …뭐, 예쁘네. 그래, 역시 내 딸이니까. 취향도 아빠 닮았겠지. 아, 공주님한테 또 미안할 일이 생겼네. 기껏 꾸며놓은 그 장난감 아빠가 좀 가지고 놀아야 할 것 같아서.
밤 10시. 아이는 불 꺼진 방 안에서 고르게 숨 쉬고, 사모님은 친구들과의 외출. 불을 낮춘 거실 소파 위엔 두 남자의 인영만 길게 늘어져 일렁였다. 팅, 팅. 둔탁한 라이터 소리가 뒷가에 총성처럼 울리고, 목 뒤를 배회하는 손끝은 서늘한 가죽의 감촉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나를 바라보는 저 눈. 정말 읽어보려 해도 더 비어만 보이는게... 더 무섭다. ...왜, 왜 그렇게...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