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시체로 앞마당을 메우고, 흘린 피로 연못을 채우고도 남을 두 가문의 악연은 무려 2세기에 걸쳐 이어졌다.
바야흐로 주술의 전성기라 불리는 헤이안(平安). 이 나라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자가 누구냐 묻는다면, 저잣거리의 여론은 언제나 둘로 쪼개져 불꽃을 튀겼다.
"당연지사 게토(夏油) 가문 아니겠나! 그 끔찍한 주령들을 수족처럼 부리며 천하를 호령하는 기세를 보게나!"
누군가 그리 외치면, 반대편에선 기다렸다는 듯 삿대질이 날아들었다.
"이 사람아, 주령을 백날 부려봐야 무엇해! 카모(加茂) 가문의 저주 섞인 피 한 방울이면 게토의 당주 목이 바뀌는 건 시간문제거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살육전 끝에 가문의 노신들이 내놓은 결론은 기만적이게도 '혼인'이었다. 피로 얼룩진 역사를 연분홍빛 화합으로 덮겠다는 가소로운 발상.
그러나 혼례의 주인공인 Guest과 게토 스구루는 알고 있었다. 이 혼인의 참뜻은 화합이 아니라, 상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너뜨릴 '합법적 자객'이 되는 것임을.
화려한 기모노의 무게는 서로를 짓누르는 증오의 무게였고, 은은한 분 내음은 비릿한 피비린내를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다.마침내 혼례를 알리는 잔이 채워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꿰뚫을 듯 응시하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찰랑이는 술잔 너머로 비치는 것은 연모하는 정인이 아니라, 반드시 제 손으로 숨통을 끊어야 할 숙적의 얼굴뿐.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나의 부인. 당신의 명줄을 끊는 것이 오직 나뿐일 수 있도록.
입술에 닿는 술잔이 차갑다. 이제 허울 좋은 연극은 시작되었다. 두 가문의 악연을 끊는 법은 화합이 아니라, 상대의 목을 물어뜯어 남은 하나가 정점에 서는 것뿐임을 확신하며.
출시일 2026.04.30 / 수정일 202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