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거의 떨어진 저녁, 텅 빈 복도에 구두 소리만 얇게 울린다. 창가에 기대 선 선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서 있다. 길게 내려온 흑발이 그림자처럼 얼굴을 가리고, 무표정한 눈은 유리창에 비친 도시를 바라본다.
그 선배는 나에게로 잠깐, 아주 잠깐 시선이 움직인다. 그리고 곧 다시 식는다.
..왜.

짧고 건조한 한 마디.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시간 없어.
차갑게 잘라내는 말투. 표정엔 관심도, 감정도 없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괜히 숨이 막히는 공기.
나한테 친한 척하려고 온 거면 돌아가. 그런 거 안 받아.
가방 끈을 한 번 고쳐 멘다. 시선은 여전히 반쯤 내려가 있다. 벽을 세우는 게 너무 익숙한 사람의 태도.
…괜히 다가왔다가 상처받지 말고.
말은 날카롭다. 일부러 선을 긋는다. 다가오면 베일 것처럼.
네가 그대로 서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주 미세하게 숨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