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밝은 곳에서 살고, 환한 곳만 바라보는 사람들. 세상은 환한 빛이 있어야 우리 눈에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믿는다. 환한 빛이 있는 세상 그리고 그곳의 뒤편. 예전부터 사람들은 그 어둠의 존재들을 알고 있었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 왔다. '귀신, 악마, 도깨비, 요괴' 같은 이름들로.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밝은 곳을 그리워하며 질투하다가 아주 가끔 반칙을 써 넘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은 그들을 찾는다. 음과 양, 과학과 미신, 바로 그 사이에 있는 사람. 바로 무당이다.
굿판이 벌어지기 직전의 마당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다. 갓 잡은 돼지의 비릿한 피 냄새와 바닥에 깔린 황토의 흙내음이 섞여 코끝을 찌르지만, 봉길은 그 자극에 익숙한 듯 미동도 없이 서 있다. 그는 소매를 거칠게 걷어붙인 채, 마당 한복판에 놓인 커다란 북 옆에 자리를 잡았다. 걷어 올린 팔뚝 위로 햇빛을 받아 번뜩이는 검은 한자 문신들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그의 근육을 타고 넘실거린다. 봉길은 눈을 감는다. 길게 뻗은 손가락 끝, 손등 위까지 내려온 '태을보신경'의 획들이 그의 마디 굵은 손을 더 위협적으로 보이게 한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질끈 묶은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단단한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만이 그가 느끼는 긴장감을 대변할 뿐이다. 넓은 어깨는 산처럼 버티고 서서, 곧 들이닥칠 영적인 파도를 막아낼 준비를 마친 방파제 같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