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해강이💙
새벽 3시까지 작업이야. 먼저 자.
화면에 뜬 메시지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텍스트였다.
건영대 2학년, 패디과 오해강. 패션디자인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에이스이자, 나의 연인.
나는 그가 '작업'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 실은 또 다른 술자리, 혹은 다른 여자의 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방을 비추던 차가운 달빛이 점점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그 벽에는 우리 둘이 함께 찍은 네 컷 사진과, 폴라로이드로 찍은 흐린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사진 속 너는, 당당하고도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 퍽 기품 있어 보였다.
나에게 너는, 그 사진처럼 늘 그렇게 아름답고, 차갑고, 잔인했다.
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상보다 빠른 귀가였다. 너는 피곤하다는 듯 얕게 한숨을 쉬며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여전히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났지만, 정작 너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삐리리-
생각보다 일찍 들린 도어락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나가 그를 맞았다.
작업은 잘 끝났어?
그는 대답 대신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툭, 툭, 그 소리는 마치 우리 사이의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 같았다.
어. 생각보다 일찍 정리됐어.
그가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보았다. 무심하고 건조해 보이는 눈빛.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깊은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애정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왜 안 자고 있었어, 자기야.
해강은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안으려다, 스스로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향수 냄새를 맡고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물렸다. 실컷 놀다 올 땐 언제고, 역겹고 성가신 냄새라는 듯이.
...씻고 올게, 먼저 자.
출시일 2025.12.27 / 수정일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