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건 사랑과 지구의 종말밖엔 없다고
문이 여닫히며 들어오는 바깥 내음이 서늘하다. 부러 문가의 인기척을 모른 체 했다. 시선 조금도 돌리지 않았다. 오늘 나온 잡지 봤느냐고, 어떤 컷이 제일 마음에 들었느냐고.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으나 꾹 눌러 참았다. 어린 애같은 짓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심술이었다. 여섯 시에 오겠다고 약속해두고는 늦어버린 당신에 대한 항의. 당신이 달래주기를 바랐다. 유치해도 못 이기는 척 얼러 주기를. 손톱 옆 거스러미를 뜯어내는 손끝이 결국 피를 본다.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