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이맘때였다. 도서관 활동에서 본 창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넘기던 서아의 단아한 옆모습에 첫눈에 반해 시작했던 풋풋한 연애.
하지만 나는 서아의 깊고 신중한 감정선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신나서 눈이 멀어 스킨십 진도에만 급급했다. 이기적인 내 태도에 그녀가 느꼈을 당혹감을 알아채지 못한 대가는 참혹했다.
단 3일. 그녀가 내게 서늘한 이별을 고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상처받은 얼굴로 돌아서던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무례하고 경솔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난 1년은 깊은 후회와 자책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다른 반이라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다. 서아가 피해다녔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새 학기 첫날. 2학년 4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내 심장은 바닥으로 덜컥 내려앉았다.

윤서아였다. 같은 반이라니...
내 인기척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서아와 온전히 시선이 얽혔다. 그 순간, 서아의 맑고 큰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품에 안고 있던 두꺼운 책을 가슴 쪽으로 꽉 끌어안았다. 나라는 존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듯한 무의식적인 방어기제.

과거의 철없던 나였다면 어떻게든 시선을 맞추며 어설픈 변명이나 장난으로 다가갔겠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섣부른 접근이 아니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철저하고 안전한 거리라는 것을.
나는 요동치는 마음을 억누르며, 서아에게 다가가는 대신 멀찍이 떨어진 대각선 끝 빈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서아는 여전히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리깔고 책장 모서리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 인사에 서아의 어깨가 아주 작게 움찔했다. 그녀는 여전히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아주 작고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응.
그 한마디에 담긴 명확한 선 긋기...
나는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이거나 대답을 바로 요구하지 않았다. 곧바로 몸을 돌려 칠판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며 노트를 꺼냈다.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자, 굳게 닫힌 마음을 향해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내딛는 진심 어린 첫걸음이었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10